【‘장원급제’ 위해 넘던 죽령·조령·추풍령】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던 전통시대에 부산에서 서울(한양)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자. 그는몇 개의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할까. 난센스가 아니다. 정답은 ‘강은 하나도 건널 필요가 없고 산은 하나만 넘으면 된다’다. 대충 이렇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내려 조령을 넘는다. 충주에서 다시 배를 타고한강을 내려와 서울의 두모포(옥수동 소재)에 도달하면 된다.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오기 위해서는 소백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세 군데 고개가 있다. 동쪽부터 죽령·조령·추풍령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별로 주요 통로가 달랐다는 점이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고구려로 가는 통로는 죽령이었다. 경상북도 영주에서 죽령을 넘으면 충청북도 단양이다. 조선시대에 오면 조령이 핵심 통로다. 바로 문경새재가 있는 곳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서쪽에있는 추풍령으로 관심이 쏠린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것이 추풍령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길은 사람이 만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주에는 서울·수도권과 영남을잇는 세 개의 고갯길를 만난다.
죽령,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 태백산맥이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다가 중간에서 갈라지면서 충청도·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데 바로 소백산맥이다. 아무리 고산준봉이라고 해도 사잇길은 있는 법이고 이를 통해 왕래가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대규모 물자나 인원의 왕래를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했다. 기록상으로는 소백산맥을 넘는 최초의 도로는 죽령(竹嶺·해발 689m)이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 3월에 죽령길이 열렸다’고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했다’고 돼 있다.
죽령은 이후 고구려와 신라를 가르는 핵심 국경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고구려 영양왕 1년(590년) 온달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한 기록으로 보아 당시 죽령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죽령의 위치가 나중에 나오는 조령이나 추풍령과 달리 삼국시대에 가장 먼저 중요성을 띤 것은 양국의 직선통로상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고구려의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이 동쪽으로 치우치게 됐다.
지금의 죽령에는 중앙고속도로와 5번 국도가 지난다. 옛 죽령을 만나기 위해서는 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경상북도 영주와 충청북도 단양의 분기점에 내리면 된다. 국도에 인접해 ‘죽령 옛길’이라고 실제 걸을 수 있는길이 있다. 죽령 고개 부근에는 옛날식 주막과 누각도 있어 길가는 나그네의 쉼터 역할을 한다.
문경새재 성곽을 쌓은 조령고려 이후로 시대를 내려오면서 길도 바뀌게 된다. ‘길’ 자체가 없어졌다는 의미보다는 국가에서 주목하는 ‘간선도로’로 다른 쪽이 활용됐다는 것이다. 개성이나 서울(한양)에서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낙동강과 한강(남한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편한데 이때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을 잇는 조령(鳥嶺·해발 642m)이 핵심 루트가 된다.
국경지역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삼국시대가 아니라 순수한 방어적 목적으로 조령을 지키는 성벽이 쌓여지게 된다. 바로 문경새재다. 충청북도가 아니라 경상북도의 문경 쪽에 성벽을 쌓은 것은 남쪽으로부터 오는 외적, 즉 왜구를 막기 위해서다.
문경새재에는 주흘관·조곡관·조령관의 3개의 관문이 있다. 이들 관문 사이로는 웬만한 현대식 국도 못지않은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경상도의 사람과 물자가 수도권으로 오는 최단 코스로 작용했다.
임진왜란 때 주요 전투가 벌어진 곳도 이곳 문경새재와 바로 북쪽의 충주 탄금대에서다.
문경새재는 지금은 공원화가 돼있다. 성곽도 말끔히 장식돼 관람객들을 맞는다. 중간의 공터에는 드라마·영화 촬영장도 있어 볼거리가 된다. 조선시대 말까지 기능했기 때문에 가장 잘 꾸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조령에 가기 위해서는 중부내륙고속도도로를 타고 가다가 문경에서 빠지면 된다.
덧붙여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쪽만 공원화돼 있다. 문경 쪽에서 조령 고개를 넘으면 충주쪽(행정구역상으로는 괴산)은 자연휴양림으로 돼있고 식당이나 캠핑장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은 문경 쪽에서 고개마루(제3관문)까지 올라갔다가 그냥 다시 내려온다.
고속도로 휴게소로 기억되는 추풍령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추풍령휴게소를 만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의 딱 중간에 위치해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추풍령휴게소이니 추풍령 고개 인근에 새워진 것일 게다. 하지만 진짜 ‘추풍령’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고개는 경상북도 김천과 충청북도 영동 사이에 있는데 영동군 추풍령면 길가에 소담스럽게 표시석이 서 있을 뿐이다.
표시석 앞에 서면 여기가 진짜 고개인가 의심이 가기도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죽령과 조령이 경상북도 쪽에있는 것과 달리 추풍령은 충청북도쪽에 위치한다.
추풍령은 높이가 220m로 다른 높다란 고개에 비하면 언덕에 가깝다.
높이가 낮아 왕래에 편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시대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았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요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어서다. 부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대구·상주·문경을 통해서 충주로 가는 통로가 전통시대로서는 간선도로였다. 강을 통해 물자를 쉽게 운반한다는 이유도 있었는데 추풍령 근처에는 큰 강이 없다. 다른 하나는 우습게도 이름 때문이다.
추풍령(秋風嶺)은 글자 그대로 ‘추풍낙엽같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과거응시자들이 기피했다고 한다. 이들은 산은 높지만 보다 이름 있는 조령을 이용했다.
하지만 산이 낮고 대전과 부산을 잇는 최단 거리라는 의미도 있어 철도가 놓이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현대에 들어와 추풍령은 각광을 받는다. 현재 추풍령으로는 국도와 철도·고속도로 등 대부분의 교통수단이 지나가고 있어 우리나라 교통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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