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교몇년 전 한국으로 아주 귀향하신 언니가 병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언니의 병은 십만명에 한명이 걸릴까말까한 아주 희귀한 병이라고 했다. 췌장과 쓸개와 간이 만나는 지점에 약 칠센치만한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언니의 아들과 딸뿐이 아니라 손주들까지 울며불며 난리들이었다. 나 역시 굉장한 쇼크를 먹었다. 언니는 지금 88세인데 여직껏 큰병 한번 걸리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사신 분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는 것은 일생에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에 있는 삼성 병원에서 다행히 암 전문의로는 상당히 유명한 분이 집도를 한다고 했다. 수술은 아주 잘됐다고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꼬매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또 한번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 두번째 수술이 너무 아파서 굉장히 고생을 했다고 나중에 언니가 직접 전화로 고백을 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심장 발작이나 암에 결려 결국은 모두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언니는 오십 초반에 미국에 오셔서 보통 한국인들이 다 겪었던 만만치 않은 고생을 하셨고, 약 35년간 미국에 사시다가 결국 말년에 아들 곁으로 가셨다.
미국에서 십여년을 일을 하였기 때문에 약 육백불 정도의 소샬시큐리트를 받고, 한국 정부에서 약 이백불의 교통비와 나이가 80이 넘으면 사는 고장에서 나오는 ‘장수비’로 오만원 가량을 받아서 이럭저럭 용돈으론 족하다고 얘기하셨다.
언니는 여자로선 참 불행하게 사신 분이다. 이십대에 혼자 되셔서 두 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내가 미국에 온 후 우리 두 아들을 키우시고 미국에 오신 후엔 자신의 손주들을 키우셨다.
"얘! 내가 헛살지는 않은 것 같구나. 내가 키운 아이들이 다 돈을 보내와서 수술비에 보태서 너무 고맙고, 내가 별로 해준 것도 없는 네 작은 아이들까지 정성을 보여줘서 난 너무 감격했단다."언니는 내딸과 막내 쟌에게서 상당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이렇듯 가족이란 보통 때는 잘 만나지는 못해도 유사시에 힘을 합할 수 있는 위력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다시 한번 가족의 힘을 보았고 느꼈다. 이래서 인생이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고 말하나보다.
언니는 일생을 참 규칙적으로 사셨다. 일찍 일어나시고 일찍 주무시고 소식과 함께 운동도 겸하셨다. 하루에 적어도 한시간씩은 걸으셨다. 언니의 장점은 매사에 긍정적이시고 잘 웃으셨다. 성당도 열심히 나가시고 친구 관계도 원만하셨다.
"내가 돈복이 있냐 남편복이 있냐. 가진게 있다면 그저 건강 하나는 타고난 것 같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것 같다."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까 복 중에 복은 건강이다.
돈도 아니고, 권력이나 명예도 아니고 건강한 자가 최후에 승리자다. 요즘은 신문을 펼치다 보면 슬그머니 부고란에 눈길이 간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나이가 젊다보면 아깝기도 하고 어쩌다가 건강을 잃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이 라스모어에서도 주위 분들이 거의가 칠십대 이상인데 거의 모두가 건강하게 지낸다. 함께 하는 아침 운동이 끝나면 어디에 맛이 있고 싼 아침밥이 있나하고 맥도날드나 버거킹, 요즘엔 타코벨까지 기웃대다가 일불짜리 부리또와 유난히 맛있는 커피를 찾아내서 그 맛에 푹 빠지기도 한다.
잘 찾아보면 멕시칸 음식은 싸고 모든 영양이 골고루 들어있다. 토티아와 고기, 치즈나 콩과 야채가 적당히 들어있고, 단돈 이불이면 특별한 커피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멕시칸 음식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 친구들은 이런 좋은 나라에서 또 최고의 은퇴지에서 노후에 잘살고 있는 우리 팔자가 최고라고 떠들면서 킬킬대고 행복해 한다.
"어쩌면 이렇게 다들 떠들기만 하고 얘기를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한번 깔깔대고 웃는다.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이런 순간 우리들은 마치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한시간 이상을 자리잡고 떠들어도 누구 한 사람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다. 이래서 미국이 또 좋다.
언니가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지만 사시는 날까지 나머지 인생은 더 건강하고 편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싶다.
우리들도 지금은 건강하지만 내일은 알 수 없다. 내일 아침 눈을 못뜨면 그게 마지막이다. 누가 더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이가 좀더 먹었다고 먼저 간다는 법도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품위를 유지할 수 있고, 주위 식구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언니! 괜찮으세요? 오늘도 나는 아침 기도를 하면서 멀리 계신 언니께 속으로 가만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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