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로서 일하면서 ‘미국에서 십대를 보낸 이민 1.5 세대로서 우리 교포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하고 고민하던 중 워싱턴한인복지센터와 이곳에서 운영하는 호프 클리닉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측의 배려로 일주일에 한번이긴 하지만, 가을부터 호프 클리닉 정신과 서비스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다 특히 한인 정신과 의사가 있는 클리닉을 찾는 일은 더 더욱 힘든 일인 것을 알기에, 무료 정신과 클리닉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내가 자라온 커뮤니티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모든 가정이 그렇겠지만, 특히 한인 이민 가정은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교 성적에 대한 관심들이 정말 높은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아이들보다는 못했겠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도 높았고, 공부외의 운동이나 오케스트라 등 과외활동도 많이 했었다. 모범생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점은 학교 성적이 좋고 주어진 일만 잘하는 것은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했어도, 일을 잘 처리한다고 해도, 무언가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얻으려고 노력한 두 가지는 남의 감정에 공감하고 같이 느껴줄 수 있는 공감 능력과 공동체를 한 목표를 향해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었다.
이 두 가지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 배운 적이 없는 것들이었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또 더 중요하게는,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1.5세대, 2세대 전문직 한인 친구들 역시 알게 모르게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우리는 성공적인 삶에 필요한 이 두 가지를 배우지 못 한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며칠 전에 ‘예전의 세대들이 경제적으로의 자수성가를 하기위해 노력하면서 그에 대한 상처가 많았다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자수성가를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말을 들었다. 수많은 미디어나, TV,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자극적인 것들을 접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오는 혼동이나, 많은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대화하며 돌봐줄 사람들이 없기에 요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혼자서 크면서 상처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 ‘정서적 자수성가’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지만, 특히 이민 가정의 아이들은 이 성장통이 더 크고 힘든 것 같다. 정체성의 혼동, 소수 민족이라는 이질감, 집안과 집밖의 문화차이 등 어려운 감정들과 생각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감정들을 같이 돌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생존에만 집중하며 살아오신 부모님 세대와 풍요 속에서 감정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 아이들이 소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특히 이민 가정은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다시한번 생존에 집중하고 계신 부모님과 미국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 사이의 언어 차이, 문화 차이, 그리고 세대 차이로 인해 이 둘의 이해의 간격은 클 수밖에 없다. 같이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대화 한마디조차도 힘들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들을 이해하고, 이끌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우기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병원을 찾으시는 부모님들, 특히 마음이 많이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께 자주 듣는 말이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게 제일 큰 바램”이라는 것이다. 모든 부모님들의 바램 일 것이다. 우리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생산적인 삶을 살기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의 성장통은 어떠한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 아이는 신체적으로 건강하니까, 공부를 잘하니까, 또는 불평불만을 안하니까, 아이의 성장통에 대해서, 정신건강에 대해서 잊어버리지는 않았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언젠가 한번 누군가가 자신에게 “힘들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지, 그때 내 기분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오늘은 우리 아이에게 “힘들지 않냐?”고 한번 물어본다면, 두 세대간의 넓은 간격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진 않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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