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 hast created all things, and for thy pleasure they are and were created.
주(主)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主)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비주"와 함께 산 지도 어언 2년입니다. 그저 애완견이 아니라 어엿한 반려동물로 식구가 된 말티즈 강아지 "비주[Bijou]"의 이름은 보석[jewel]이란 뜻입니다. 새하얀 털과 영롱한 눈망울이 눈부신 보석같이 귀하게 느껴져 지은 이름인데, 이름에 걸맞는 견생(犬生)을 구가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과 함께 살며 소위 명색이 주인인 내가 느끼고 배우는 구석이 많습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종종 대견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얘는 도대체 "왜 사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선 얘는 "왜 사는가?" 따위의 질문과는 전혀 무관하게 산다는 겁니다.
묻지 않고 그저 순간순간에 철저히 몰입하며 "지금 여기 [Here & Now]"를 백퍼센트 충실하게 살 뿐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앙증맞게 환희작약하는가 하면, 문득 무료해지면 어느새 가늘게 코골며 낮잠을 즐깁니다.
맛있는 음식을 따로 찾지 않으며, 그저 주는대로 늘 같은 먹거리에도 대단히 만족해합니다. 간혹 끼니 때를 놓치면 은근하고 가련한 응시로 주인의 측은지심을 자극합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얘의 견생은, 인생의 음주/가무같은 향락/오락 따위와는 전혀 무관하게, 마치 선승의 하루같은 잔잔한 일상을 불평없이 꾸려 간다는 겁니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는 위선같은 건 전혀 찾아보기 힘들고,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시원함이 청량합니다.
Thou hast created all things, and for thy pleasure they are and were created.
주(主)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主)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명색(名色)이 주인(主人)인 나는, 그럼에도 간혹 자문하곤 합니다. 이 녀석 견생(犬生)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얘의 존재 이유는 뭔가? What is her raison d’être?" 식구들에게 그토록 귀염받는 강아지 "비주"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곰곰히 묵상해 보니, 기실 귀염받기 위해 태어나 이렇게 존재하는 게 바로 이 녀석 견생의 의미가 아니고 뭐겠는가 하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이 녀석 견생(犬生)의 ‘레종 데트르’ 속에 홀연 내 인생의 ‘레종 데트르’가 깨달아집니다. 얘가 즐겁게 뛰놀고 힘차게 짖으며 잘먹고 잘싸고 잘자는 가운데 주(主)인 나를 주(主)로 알아 봄이 그토록 주인을 즐겁게 하더란 거죠. 개가 주인을 주(主)로 알고 반기니 개와 주인이 모두 즐겁더라! 바로 거기에 ‘존재의 이유’가 덩그라니 들어 있더라.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사는 드높은 영성지능의 소유자들은 이미 ‘레종 데트르’를 알게모르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저렇게 여러가지 말과 표현으로 쉽게/어렵게 ‘존재의 이유’를 풀어 보지만, 기실 답은 의외로 쉽고 자명합니다. 창조주를 알아서 받들어 모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라는 게 바로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라는 인간의 ‘레종 데트르’인 것입니다.
Thou hast created all things, and for thy pleasure they are and were created.
주(主)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主)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성경 맨 마지막 책인 "계시록" 4장 11절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우리집 강아지 ‘비주’의 존재 목적 가운데 으뜸이 주인 나를 기쁘게 하는 데 있는 것처럼, 내 존재의 으뜸 목적은 창조주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란 걸 실증적으로 깨닫습니다. 강아지와 주인의 관계 속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보입니다.
창조주를 따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웃을 나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보편적 진리에 속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단순하고 간결한 진리, "친절이 나의 종교!"란 말씀이 바로 이웃사랑 진리의 핵심이란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Kindness is my religion! 사람 사는 방법이 이보다 더 고상할 수 있으리오?
그럼에도, 한 구석 허전한 느낌이 남습니다. ‘우러르는’ 면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위론 하늘을 섬기고 옆으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경천애인(敬天愛人)”까지 가야 구족된 진리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사실 섬기고 사랑하는 게 다만 "주를 기쁘게 하기 위함"의 부분들에 지나지 않음이 보이나요? 결국 참진리 하나는 오직 "for Thy pleasure"임이 느껴지나요? 그래서, 계시록 4장 11절이야말로 사람 사는 ‘레종 데트르’의 확답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강아지 "비주"의 견성(犬性)을 통해서 말입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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