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문학 제 2호가 지난 8월 13일 UC 버클리 대학에서 출판기념회가 열였다. 고은의 무제시는 한국시의 현주소처럼 느껴졌다. 이념이 고갈된 쓸게없는 지경에 한국시는 처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핵무기 문제 공해와 과소비에 의한 과생산으로 지구가 병들었는데 신선놀음에 도키자루 썩듯이 한국시는 순수라는 아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의 예언자적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시인들은 말장난 하듯이 시를 쓰는 것이다.
<무제시편 20>백년의 아이가 선잠 깨어 칭얼칭얼 말한다./바다는/ 바다 밑이 없다고// 그렇다//언제나/네 얼굴은/ 네 얼굴의 꿈이라고//세계는/ 세계의 무엇이라고//저것은/ 저것 이하/저것 이상/저것이라고.
상기한 시는 시에서 중요시 되는 주제가 없다. 문장의 요소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시다. 서정주 김소월 박목월 등등 한국시를 한글시로 태동하게 한 그 많은 선배 시인들은 주제(Topic) 부연(Detail) 마무리(Conclusion)로 시를 완벽한 문장으로 썼던 것이다.
<백년의 아이가 선잠에서 깨어 칭얼칭얼 말한다.>가 주제인데 주제의 성격이 백년의 아이가 한국 현대사 백년 일수도 있다고 쳐도 주제가 너무 빈약하다. 주제는 시 전체를 지배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시던지 첫장은 확실한 의미를 담아야 한다.
그러나 무제가 뜻하는 말장난은 보이는 바다는 밑이 없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제 얼굴을 갖고 있다고 그러나 어떤 얼굴을 갖고 있는지 디텔도 없다.
꿈은 무슨 꿈일까? 또는 다함께하는 세상은 무엇일까 보이는 그대로 <저것은 저것 이하 저것 이하 저것 이상 저것 이라고> 성실하지 못하게 마무리 한다. <무제시편 158>에서 <먼곳이 다 없어지고 있다.>로 시작해서 < 나는 나로부터 멀고 멀다.>로 마무리한다. 내가 밟았기 때문에 발밑에서 알라스카 시베리아 캄자카가 존재하는 내 80년만의 희망봉이 나는 나로부터 멀고 멀다.
80년 인생에서 그 곳 여행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추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목도 없이 허접스러운 다작은 시인의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는 꼴이다. 오죽이나 이념이 고갈 되었으면 무제시를 158편이나 썼겠는가?
서정 시인들의 다작은 해독이다. 특별한 모티브도 없이 다작을 한다는 것은 20대 초반에 대표작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시인들은 20대에 대표작을 쓰게되고 자신의 내면 세계의 시혼을 다 퍼올렸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예를 들면 초기 상징주의 시에서 뛰어난 걸작을 남기었으나 <처용단장>에서 무의미라는 애매한 설정으로 하여금 말년에 작품들은 성실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의미가 뜻하는 것은 현상학적 판단중지이며 현상계가 성립할 수 없는데도 시학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한국의 평론가들은 게으른 건지 실력이 없는 것이지 알 수 없으나 김춘수의 무의미 시에 대한 바른 논평을 하지 못했으며 고은이 다작에 대한 평도 유보했던 것이다. 시제가 없는 불성실한 시작 태도에 이의를 제기 해야 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샌프란시스코는 특별한 곳이다. 전후 모더니즘의 정답으로 <히피>가 문명의 허상에서 벗어나 사회적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삶을 추구했던 곳이며 게이와 레즈비안이 동성의 사랑을 주장한 곳이며 다민족이 다문화의 자유를 구가하는 격정이 넘치는 곳이다.
다함께 즐기며 다함께 자신들의 자유를 사랑하는 국제 도시인 것이다. 여기에 미국 시민으로써 한국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전망>에대한 立論을 하게 되었다. 20세기 모더니즘이 국가와 문명의 허상에 대한 비평으로 시작 했다면 21세기 병든 지구의 치유를 위해 시인들은 도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시도 학문이기 때문에 <다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 활보하면서 <산골짜기에 들국화가 곱게 피었다>노래한다고 해서 지구의 공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어서는 않된다고 김희봉은 <불타는 숲>에서 지적했던 것이다.
시학으로 자연의 생리를 지키는 실천 의지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제 미국시민으로써 한국문학을 시작하자 <무엇이 가능하다>는 철학적 명제가 아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시학적 명제를 노래하여 이념이 고갈된 한국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 세상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세상이 있는 세계를 그려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