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팩스 카운티의 애난데일 고등학교에 새 교장이 부임했다.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에서 9년간 교장으로 있었던 티모씨(팀) 토마스 (Timothy Thomas) 씨다. 나는 작년 가을에 토마스 교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학교 자매결연 체결 관계로, 나는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감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며칠간 서울, 인천, 부산, 통영 등을 같이 돌아보며 서로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식사, 학교방문 등도 같이 했고 밤 늦게 홍대 앞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다. 토마스 교장은 불고기뿐만 아니라 치맥, 전복죽, 꼼장어와, 비록 한 두 젓가락이었지만 산낙지까지 맛을 보았다.
그런데 토마스 교장이 지난 주 여름학기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여름학기 졸업생들은 무엇인가 어려움을 겪어 동급생들과 같이 정시에 졸업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어떤 메세지가 전해지나 궁금했는데, 학생들에게 큰 귀감과 자극, 그리고 도전이 되는 내용이었다.
그 연설 내용을 본인의 허락을 받아 소개한다. 토마스 교장은 자신의 세 가지 경험담을 교훈 삼아 나누었다. 첫째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였다. 스페인어로 논문 작성과 발표를 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래서 영어-스페인어 사전의 종이가 덜덜 닳을 정도로 준비했다. 그런데 교수님으로부터 돌려 받은 논문 위에는 온통 빨간 볼펜 글씨 투성이었고 성적은 “D”였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겨우 D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 말씀은 논문을 보니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로 생각해서 쓰고 나중에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고 한다.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대상 언어로 생각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몹시 창피하고 실망스러웠지만 그러한 지적을 가슴에 간직하고 스페인어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소개한 경험은 고등학교 10학년 때라고 했다. 자신은 대수를 잘 못했다고 한다. 대수 다음의 수학과목이 기하였는데 대수를 못해도 기하를 잘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기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고 성적은 형편 없었다. 두 번째 쿼타가 끝날 때쯤 아버지가 자신이 숙제를 제대로 안해 내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숙제를 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셨단다. 지금 숙제를 제출해도 이미 제출시한에 늦어 성적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항변했으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해서 제출했다. 물론 성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수학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성적 이상으로 중요한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적과 상관 없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하는 것의 중요성을 체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눈 교훈은 대학교 때 일이었다. 2살 차이의 형과 같이 버지니아텍에 재학 중이었는데 봄방학 기간 중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음주운전이 관련되었다. 누구보다도 가까왔던 형의 사망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아픔이었다. 그 때의 후유증이 오래갔다. 공부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다.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허드레 조경 일을 했다. 그래도 노바 커뮤니티 대학에서 몇 과목을 신청해 수강했다. 그러다가 4년제 대학인 조지메이슨 대학으로 전학했다.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스페인어 전공으로 졸업했을 때는 고등학교 졸업 후 7년만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한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토마스 교장은 대학 졸업 후 센터빌 고등학교에서 8년을 평교사로 먼저 가르치다가 교감이 되었다. 그리고 6년 후에는 교장이 된다. 2013년에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올해의 교장상을 수상했다.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에서도 훌륭하게 교장직을 수행했지만 앞으로 애난데일 고등학교에서도 모범적으로 학교를 리드해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의 특출난 인생 경험이 어쩌면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창한 스페인어 구사 능력도 애난데일 고등학교에서의 교장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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