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세상을 살수록 모르는 게 점점 많아진다. 짐짓 엄살이나 겸양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휴대폰 기능도 제대로 몰라, 체면무시하고 자녀나 손자녀들에게 물어야 한다. 이러한 정도는 급변하는 세계화시대,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쌍방향 시대를 맞이하여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나와 너무도 다른 낯선 문화와 종교들, 동성결혼 합법화처럼 수용하기 쉽지 않은 엄청난 결정들, 지구와 쏙 닮은 사촌형 뻘 되는 행성의 발견처럼 세계관을 바꿔야 할지 모를 새로운 우주적 발견 등등 점점 판단하기 어렵고, 행동하기 쉽지 않은 세상 속에 산다. 자연히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시민의 모습, 새로운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오늘 이 시대 어떤 삶의 방식이 가장 적절할 것인가? 과거 역사를 보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철인(哲人)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니체는 초인(超人, ubermensch)의 출현을 말했다. 세상은 시대의 전환점에서 영웅이나 위인을 기다렸고, 종교계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현인이나 성인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어느 한 사람의 영웅이나 소수의 철인이 주역이 될 수 없는 시대이다. 현대는 과거에 비하여 복잡성, 다원성, 배타성이 혼재된 급변하는 사회이다. 과거 자신의 최신 지식이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자기 지식의 화석화를 망연히 바라보는 시대이다. 오늘의 세상은 어느 일방이 아니라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양방향의 시대이다. 서로의 요구에 대하여, 대면하는 낯섦과 새로움에 대하여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 곧 ‘배움’(學, learning)이 더 없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배움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이어오게 한 위대한 활동이며, 자연만물 속에서 인간의 품격을 유지시켜 준 삶의 방식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공자((B.C.551-479)만큼 배움을 강조하고 예찬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그는 논어에서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일성(一聲)으로 배움의 기쁨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였고, 일생 배움과 가르침을 통하여 인간의 길(道, Way)을 찾았다.
왜 배움인가? 배움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경험의 소통이며, 현재 세대와 과거 세대와의 만남이다. 배움은 개인이 지녀야 할 덕성을 갖추게 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달아 고치게 함으로 개인의 성품과 인격적 완성을 이루게 한다.
배움은 인간의 삶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다가 아니며, 보이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배움은 사랑과 자비, 선과 아름다움,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진리와 절대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한다. 끝으로 배움은 우리를 ‘새로움’과 ‘열림’으로 인도한다. 배움은 무지나 ‘닫힘’으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며 ‘열림’을 향한 과정이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배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배움을 통하여 과거에 묻고, 낯선 사람과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개인이건 종교이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문화나 종교에 대한 무시나 배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월적 입장에서 강요나 배타가 아닌, 기꺼이 서로에게 배우려는 ‘배움’을 통하여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에게 배우는 배움의 시작은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요(필립 2:3), 상대를 존중하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되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이다.
지금 이 시대는 배움을 통하여 겸손히 ‘모름’을 묻고, 진지하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참고 기다려주는 가운데 그 ‘차이’를 극복해 가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소통과 이해, 조화와 상생, 지속가능한 미래가 요구되는 이 시대의 주역은 철인도 성인도 아닌 기꺼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의 사람 곧 학인(學人)이 되어야 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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