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내가 소속된 애난데일 로터리클럽의 회원인 그웬 코디 씨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코디 씨는 지난 6월 초 페어팩스 카운티의 록키런(Rocky Run) 중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역사증언의 날(Eyewitness to History Day)’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그 후 학생들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는데 그에 대한 답장을 이메일로 보내면서 나에게 카피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어른들로부터 그들이 경험한 미국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듣고 배운다. 14년간 지속되어 온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제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했다가 지금은 한국전, 월남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들 뿐 아니라 경제대공황 그리고 오클라호마, 9-11 등의 테러 사건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에 있었거나 당대를 살았던 어른들로부터 학생들이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듣고 질문하며 사건들이 남긴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중학생들에게 이러한 얘기를 해 주는 어른들의 상당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기에 얘기를 듣는 학생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니 증조부 또래가 되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나이, 세대 차를 뛰어넘어 모두가 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비단 학생들 뿐 아니라 경험담을 얘기해 주는 어른들도 자신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어린 학생들의 자세에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경험담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해 주길 바란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거나 큰 일을 했던 사람들만 경험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취사병, 운전병 그리고 일반 시민으로 겪었던 얘기들을 나눌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내가 코디 씨를 소개한 것은 그가 제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에서 암호해독사로 일했었다고 해서였다. 그리고 코디 씨는 학생들에게 경험담을 들려 준 후 받은 질문들을 보니 그냥 행사치레로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었고 사전에 제법 준비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학생들이 참가 어른들 모두에 대해 그룹별로 나누어 사전 리서치를 했다. 그러기에 그만큼 의미있는 질문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디 씨는 당일 아침 길을 잘못 들어 지각을 했지만 내년에는 꼭 제 시간에 도착할 것이라며 벌써 내년을 기다리는 설렘까지 드러냈다.
코디 씨는 내 로터리클럽에서 최초로 여성 회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30여년 전 버지니아 주 하원의원을 지냈다. 나와는 소속 정당도 다르고 정치적 견해 차이도 상당히 커 가능하면 정치적 대화는 피한다. 때로는 거북한 내용의 이메일들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그냥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대응을 않는다. 코디 씨 나름대로는 신념이 담긴 내용일텐데 내가 무시해 버리는 듯 해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서로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코디 씨는 그러한 정치적 부분을 제외한다면 대화를 나누거나 클럽 활동을 같이 하는데 있어 상당히 좋은 분이다. 성격도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 나며 나이 차이에 상관 없이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다. 아직도 부동산 중개업자로 손님들을 안내하는 모습이나 몇 시간씩 떨어져 있는 본인의 농장에 손수 운전하고 다녀 오는 얘기를 들으면 그 분의 노익장이 부러워진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보내온 이메일 안에는 록키런 중학교의 한 학생의 재치가 담겨 있었고 그 내용이 나를 더욱 흐믓하게 했다. 이 날 행사에서 코디 씨는 안내를 담당한 여학생에게 자신의 나이가 39살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물론 그 얘기를 학생이 곧이 듣진 않았지만 이 분은 자신의 나이가 난독증(dyslexia)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93세인데 난독증이 있으면 39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안내를 맡았던 학생이 보내온 감사 편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고 했다. “결국 우리 나이 차이가 얼마 안되네요. 내 나이는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31살 입니다.” 13살 중학생 소녀의 재치가 93살 할머니와 50대 말의 교육위원을 마냥 즐겁게 해 주었다. 고맙다, 소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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