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판이 여야 구분 없이 내분을 거듭하고 있다. 잠깐 평온해진 듯 보이지만 다시 분쟁이 도져 시끄러워질 추세다. 야당에선 이미 일백여명의 간부 당원들이 탈당을 단행했다. 분당, 신당 조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탈당 도미노가 쉽게 예견된다. 탈당이 분명한 정치행위의 한 방법이거늘 왠지 우리 지식인들은 탈당을 배신으로 혐오하고 범죄시하는 후진적 사고를 서슴없이 표출한다. 우리 정치인 지식인들의 낙후된 단면이다.
의회주의가 발달한 정치 선진국들은 탈당 자체를 시비하지 않는다. 탈당의 장본인이 거물 정치인들일수록 결단이나 위대한 용단으로 평가받는 게 통례이다.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정치 대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보수당에서 조세법에 관한 견해 차이로 의견이 다르자 서슴 없이 탈당하여 자유당으로 갔다. 처칠은 자유당 정권에서 통상장관, 해운장관 등 요직을 지내고 다시 5년 뒤 보수당으로 돌아왔다. 보수당으로 돌아온 그는 노동당 등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수상을 지냈다. 이때 그 어떤 영국 정치인이나 언론도 그의 탈당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처칠의 정책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뿐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일본 민주당 최초의 총리를 지낸 하토야마 유키오도 원래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창당한 자민당에서 탈당한 인물이다. 그와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여 총리 취임을 도왔던 현 일본 정계의 최고 거물로 꼽히는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는 40여명의 동료 의원들을 데리고 다시 민주당을 탈당해버렸다. 그런데 사무라이 전통 등으로 의리를 중시한다는 일본이지만 손꼽히는 언론들, 아사히, 요미우리, 산케이 같은 매스컴들이 결코 탈당에 대한 인신공격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탈당을 정치인의 확고한 소신이나 결단으로 보는 선진 수준의 인식이라고 할까.
자신들이 미는 보스나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감만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남의 탈당을 향해 마구 인신공격을 해대는 우리나라 정치판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나라 정계 거물들인 박정희(남로당),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손학규, 이회창, 박근혜 등 탈당 안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인제는 자기 입으로 13번이나 정당 간판을 갈아 달았다고 하는데 탈당이 실제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다. 대부분이 집권을 해보기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가 누구의 탈당을 비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아닌가. 어째서 탈당이 정치인의 문제가 되나. 정당은 결코 한번 들어가면 구속돼 버리는 정치인들의 형무소가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정당이 자기의 철학이나 소신에 맞지 않으면 그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언제든지 뛰쳐나와 합리적인 자신의 노선을 지켜가는 것이 정도다. 대개 독재 국가는 당원들의 탈당을 배신자로 취급한다. 북한의 세습 독재가 그렇고 남한의 군사 독재가 그랬다.
미국의 전 상원의원으로 대통령에 출마했던 조지 월레스도 민주당으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앨라배마 주지사로 출마해 3번이나 당선, 임기를 누렸다. 그의 탈당 때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나 어느 언론도 어느 국민도 탈당을 비난하고 악평하지 않았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의 멋진 정치 풍속도이다. 다만 그의 강력한 보수 지향성을 지적하고 평가했을 뿐이다.
탈당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그런 행태야 말로 전형적인 정치 후진국의 악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은 파벌 독주 만연으로 획기적인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치공작이나 일당 독주의 횡포로 사실상의 정치 가장 무도회가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정치 혁신을 이루려면 이들의 울타리를 뛰쳐나와 새로운 활로를 열어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연이 높이 날려면 역풍을 맞아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탈당을 선동하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치 혁신을 완수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보장해주려면 탈당으로 신뢰를 보여야 한다. 불의 무리들과 뒤섞여 있는 정의 세력은 실망과 좌절만을 맛보고 있지 않은가.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역풍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맞서 싸워야 한다. 물론 뒷거래가 있거나 부정 음모가 포함된 탈당은 지탄을 받아야겠지만 국가 정의 국민을 위한 탈당이 줄을 잇는다면 왜 마다하겠는가. 큰 정치인의 탈당은 위대한 결단이요 용단이다. 다함께 손잡고 희망의 미래를 위하여 전진하자. 지금 국민들은 새 정치에 의한 새 세상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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