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들이 겁도 없이 유리창까지 두들겨가며 애써 키운 꽃들을 죄다 먹어치워요. 녀석들 때문에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못 키우죠. 철망도 쳐 보고, 사슴 쫓는 라디오도 설치하고, 별짓 다 해 봤지만, 말짱 헛일이에요.” 열심히 텃밭, 꽃밭 가꾸는 친구의 얘기다.
“쳇! 그것도 불평이라고! 벌 받아요, 벌 받아. 창밖의 사슴은 예쁘기라도 하죠. 게다가 집안에까지 들어오진 않잖아요. 우린 너구리가 들어와 얼마나 골치 썩었는데요.” 널찍한 정원 달린 집을 가진 이형의 소리다. “너구리가 집안에요?” 내가 소리쳤다. 너구리라면 나도 할 말 있는 몸 아니던가? “요놈들이 재주꾼이에요. 굴뚝 타고 내려와 벽난로 뒷쪽에 집 짓고 새끼 깐 거죠.”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거실에만 가면 벽난로 뒤에서 한 살림 차리고 사는 소리가 나는데 그걸 몰라요? 우리 거실이 마치 자기 집인 듯 배 째라 하고 겁 없이 살고 있더라니까요. ” “그게 너구린지 다람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나로 말하자면 보통은 얌전한(?) 편이지만 궁금증이 나면 참지 못한다.
“내 사연 좀 들어 볼래요?” 하더니 이형은 너구리와의 인연(?)이랄까, 아니면 영토 놓고 하는 전쟁이랄까를 장황히 늘어놓았다. “내 손으로 잡아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혹시 물든지 하면 큰일이다 싶어 겁나데요. 그래 페스트 잡는 회사 불러 처치해 달라고 했지요. 장갑차나 탱크 정도 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큰 트럭을 몰고, 크고 장대한 몸에 으스스한 문신을 가득 그린 녀석들이 세 명이나 왔더라고요. 그리곤 갖가지 도구인지 무기인지를 끄집어냅디다.” 이형은 전시상황 보고하는 아나운서처럼 긴장감까지 불러일으키며 설명했다. “글쎄 이 장사들이 벽난로 속에서 새끼 너구리를 여섯 마리나 꺼내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그 여섯 마리를 플라스틱으로 된 함지박 같은데 넣고 손 탁탁 털고는 ‘일 다 끝냈으니 돈 달라’고 하는데 기가 차더라고요. 거금의 출장비 플러스 마리당 30불이래요. 나 같은 피라미가 관우 장비같은 장사 세 명 앞에서 어쩌겠어요? 줘야죠.” 쓴 한약 삼키듯 이형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입은 웃으려 애썼다. “녀석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더니 돌아서서 그냥 떠나는 거예요. 그래 달리는 트럭 뒤쫓아가며 외쳤죠. ‘아니, 여보쇼. 저 새끼들! 저 새끼들!’ 하고 말입니다. 안 그래요? 제가 너구리 새끼들 데리고 어쩌라는 겁니까?” 이형은 침을 삼켰다. “자기네가 가지고 온 함지박에 넣었으니 의레 가지고 갈 줄 알았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형의 설명을 듣고 있던 우리도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을 기다렸다. “녀석들이 트럭 세우고, 창문 스르륵 열고, 얼굴 삐죽 내밀고는 ‘거기 놔두면 곧 어미가 와서 다 데리고 갈 겁니다.’ 하고 씩 웃더니 창문 다시 닫고 가 버리데요.” “진짜 어미가 와서 데리고 가던가요?” 그 말엔 대꾸도 없이 이형은 계속했다. “꼬물대는 너구리 새끼 여섯 놈들이 갓난 강아지 모양 낑낑대는데 먹으라고 음식도, 물도, 우유도 다 줘 봤지만 먹을 생각은 않고 계속 어미만 찾아대는 거예요. 날이 워낙 무더워 걱정 되길래 나무 그늘에 끌어다 놓고 어미가 와서 데리고 가라고 얼씬도 않고 내버려뒀어요. 사람이 얼씬댄다고 어미가 겁나서 안 오면 어쩝니까? 한 사흘 지나니까 진짜 어미가 데리고 갔는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데요. 아이고 살았다, 이젠 됐다, 하고 가 보니까 웬걸, 여섯 놈 모두 죽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질 않겠어요?”“어머나, 그래서요?” “고무장갑에, 마스크에, 덮어쓰는 고글안경에, 진짜 달에 가는 우주인 못지않게 중무장하고, 두꺼운 쓰레기 봉지에 겹겹이 싸 넣은 후,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고 왔지요.” “어머, 어미가 올 거라 했잖아요?” “그러고 나서야 트럭 운전사 녀석이 떠나면서 기분 나쁘게 씩 웃던 모습이 떠오르더라 이겁니다.”
남이야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난 이형의 이야길 99% 믿는다. 무더위 식히라고 꾸며댄 이야긴 아닐 거라고. 그런데 혹 이 형네 벽난로 자리가 한때는 너구리 조상님들의 집터 였던 건 아닐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