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반드시 죽는 존재라면 차가운 병실에서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 왜 벌여야 하나
▶ 연명치료에 매달리지 말고 남은 삶 어떻게 살까에 초점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지음·부키 펴냄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간이라고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죽음은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더이상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육체와 정신이 점점 쇠락해 가면서 더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과 보건체계는 이 문제를 두가지 방향으로 해결해 왔다.
하나는 요양원이라는 보호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고, 다른 하나는 노년에 직면하는 각종 질병들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다만 요양원이나 공격적 치료에는 공통적 문제점이 있다.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포함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신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말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 인간다운 죽음을 준비해야
= 죽음은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때로 잊는다. 이는 부분적으로 의학과 공중보건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늘어났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래 살기를 꿈꾸며, 현대 의학은 바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외과 수술, 화학요법, 방사능 치료 등으로 대변되는 의학적 처치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차가운 병실에서, 그렇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할까. 결국은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죽어 간다.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미루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최근 새롭게 도입된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즉 요양원과 같은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독립적 삶을 보장해 주는 개념의 시설 등의 사례를 들면서 요양시설과 제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 한국 현실은 더 큰 개선을 요구한다
= 잠시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1년전인 지난해 5월28일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요양원에 입원중인 노인 20명이 화재로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사실상 ‘감금’상태에 있다가 새벽에 발생한 화마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국내에서 요양원·요양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관리부실과 이윤추구에 급급한 상태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곳이 아니라 수용하는 시설에 그치고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 시작된 요양원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경제성장과 함께 복지, 특히 노인복지가 강화되면서 병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안되는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환자들로 병실이 꽉 찼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그와 더불어 의학도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나라 전체가 빈곤한 상태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죽음을 맞는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이제 사람들은 아플 경우 병원을 찾는다. 따라서 집보다 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세번째 단계, 즉 한 나라의 소득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진입한 즈음 사람들은 삶의 질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살에 질에 대한 고려는 몸이 아플때도 계속 이어진다. 이로 인해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다시 늘어난다. 미국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반면 한국사회는 이제 겨우 두번째 단계다. 후진적인 요양원 참사가 잇따르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에서 제도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어떻게 죽을 것인가’ 보다 어떻게 노인들을 ‘관리’할 것인가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곧 세번째 단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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