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동 자갈마당’ 검은빛·하얀 띠 돌 어우러져 장관
▶ 해안가엔 600여그루의 해송이 ‘붉은 둥치’ 자랑
[서해의 보석, 인천 옹진군 덕적도]
어쩌다 보니 덕적도가 서해 섬들의 상징처럼 됐다. 관광산업 측면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과거 이 섬은 각종 산물로 풍요로웠고 이를 즐기려는 관광객도 많이 찾았다. 하지만 어획량의 격감, 전반적인 섬여행의 매력 감소와 함께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치명타가 됐다.
직·간접적으로 섬 관광과 관련된 2개 정부부처 장관이 최근 잇달아 방문한 것도 덕적도다. 지난 7~8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봄 관광주간’과 관련해 이 섬으로 1박2일 캠핑여행을 다녀왔으며 앞서 지난달 9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여객선 안전관리 점검을 위해 덕적도행 여객선을 탔다.
덕적도도 변화하는 중이다. ‘마리나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 등 ‘에너지 자립 섬’ 구축도 시도중이다. 관광객의 발길을 돌릴 다양한 시설도 마련하고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직선 거리로 50㎞, 배로는 1시간20분가량 걸리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덕적면)를 다녀왔다.
◇ 서해를 지키는 전략 요충지
‘덕적도를 보지 않고는 한국사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섬은 우리 역사상 중요한 곳이다. 신라·백제·고구려 3국의 운명이 이 섬에서 결정됐고 그 결과는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라 태종 무열왕 7년(660년) 6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13만 군대와 함께 서해를 건넜다. 소정방은 백제땅에 닿기에 앞서 우선 덕물도에 머무른다. 무열왕은 태자 법민과 김유신을 덕물도로 보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태자가 장군 소정방을 만나자 정방이 태자에게 나는 바닷길로 가고 태자는 물길로 가서 7월10일에 백제의 왕도 사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백제 공격을 위한 신라와 당나라 수뇌 최후의 작전회의가 덕물도에서 이뤄진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덕물도’ (德勿島)는 바로 지금의 ‘덕적도’ (德積島)다. 결국 덕적도 회동의 결과로 백제는 멸망하고 그 직후 왜(일본)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했다가 패해서 물러간다. 8년 뒤에는 고구려도 멸망하고 남쪽에 신라, 북쪽에 발해의 남북국 시대로 이어진다.
인천 연안부두를 떠난 여객선은 1시간20분 서해를 헤치고 나간 후에 덕적도 ‘도우선착장’에 도착했다. 섬면적이 21㎢니 서울 여의도(한강 둔치까지 포함해 4.5㎢)의 다섯 배 정도되는 크기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우의 집들을 지나 왼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면 소재지가 있는 진리가 나타난다. 마을 이름에 진(鎭)이 붙은 것은 이곳이 전통시대부터 서해를 지키는 군부대가 주둔했다는 뜻이다. 왜구 등의 침입으로부터 경기 지역을 지키는 핵심 위치라는 것이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국수봉은 일반 답사자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군기지가 있는 통제구역이기 때문이다. 덕적도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서해의 전략 요충지라는 말이다.
◇ 풍부한 놀거리·볼거리
덕적도 최고의 절경은 국수봉 끝자락 서해 바닷가로 ‘능동 자갈마당’이라고 부르는 해변 풍경이다. 능동 자갈마당에 닿으니 입구의 경고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다 및 해변에서 자연석을 무단으로 채취하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뭘 시작부터 겁부터 주고 그러나’ 하고 생각하며 해변으로 들어선 순간 그럴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기묘묘하고 예쁜 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주로 검은빛 돌들인데 더러는 하얀 띠가 둘러쳐 있는 것들도 있다.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돌들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 이런 경고판을 세워뒀다고 한다.
바다만 예쁜 것은 아니다. 섬 전체가 아름다운 소나무로 덮여 있다.
‘201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라는 행사에서 어울림상을 받은 서포리 소나무 숲이 대표적이다. 원래는 마을로 밀려드는 바다의 해풍과 날리는 모래를 막기 위해 조성한 해안 숲인데 이들이 울창한 노송으로 변한 것이다. 규모만 500m에 달한다.
면사무소가 있는 진리에도 울창한 솔숲이 있는데 주택가부터 바닷가 모래밭을 따라 600여그루의 해송이 붉은 둥치를 자랑하며 모여 있다.
덕적도는 하늘에서 보면 서북쪽의 국수봉(314m)과 동남쪽의 비조봉(292m)을 잇는 대각선으로 산줄기가 있고 주변에 평지가 펼쳐진 형세다.
산줄기 남쪽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서포리 해변이고 북쪽은 소재 해변이라고 한다.
이외에 특이한 곳으로는 북리의 해안가 방파제 끝에 덕적도 등대가 있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등대에 바다 그림을 그려 넣어 방문객들을 미소 짓게 한다. 학교 이름도 재미있다. 진리에 있는 학교는 ‘덕적초·중·고등학교’다. 울타리 안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모두 있다는 의미다.
◇ 관광으로 영광 재연
덕적도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1950년대 1만명이 넘던 인구는 현재 1,2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서해 어족자원 고갈은 심각하다. 어장을 가득 채웠던 민어는 이제 본섬인들도 맛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제 새로운 대안을 관광산업에서 찾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리에 있는 마을기업 ‘으름실 마을공동체’다. 이 지역 40여가구가 새로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자구적인 노력으로 만들었다. 2012년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됐으며 관광객에게 산나물 채취와 바지락 캐기 등 농어업 체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노력들의 일환으로 이 섬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달 초 연휴에는 매일 1,000~4,000명의 외래객이 이 섬을 찾았다.
다양한 현대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서포리에 100여척의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마리나 조성사업’이 추진 중이며 태양광 발전 확대 등 ‘에너지 자립섬’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남철 덕적면장은 “관광산업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듯하다"며 “섬주민들의 자체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부 기업이나 인천시·정부가 덕적도의 가치를 깨달아 지원을 늘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와서 개발의 광풍을 피해간 것이 덕적도로서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은 난개발이 적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 섬은 안개에 싸여 더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길도, 마을도, 집들도 예쁘다. 잘 가꾸기만 한다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보석 같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최수문 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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