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꺼내자 “사진은 못 찍게 되어 있습네다”
▶ 넓은 순안공항 활주로 장비없이 사람들이 건설
순안 공항에 내린 정찬열씨.
순안공항 넓은 활주로를 장비없이 사람의 힘으로 건설하고 있다.
[정찬열 시인과 떠나는 북한여행 - 1. 순안공항에 도착하다]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여섯 번에 걸쳐 독자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북한에 간다고 하자 어떤 분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곳은 안내원을 따라 북한 정권이 허락한 지역 허락한 사람들만 만나는 거잖아요. 북한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그것을 선전하도록 하는 거 아니던가요.”
일리 있는 말이다. 안내원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곳이 북한이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일이 원리원칙대로만 움직여지던가. 21일 동안 북한 곳곳을 돌아보는데 꼭 보여주고 싶은 것만 눈에 보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어디에서 보았느냐 이고, 그보다는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국 모든 것은 ‘기억’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본문보다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듯, 작가의 ‘시선’이 관건이 된다.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보이는 것을 꼼꼼히 기록했고, 느낀 것을 기억 속에 담아오려고 노력했다. 이 글을 쓰려고 노트를 펼치는데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반박하기 어려운 진리처럼 느껴진다. 구겨진 수첩 속에서 “그 무서운 땅을 무엇 때문에 가려느냐’ 며 기를 쓰고 말리던 아내, ‘무슨 일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 험한 곳을 가느냐’ 걱정하던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LA 공항에 배웅 나왔던, 비장하고 처연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혼자 가는 길이라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
◊ 순안공항 도착
2014년 10월 4일 13시 55분, 고려항공 비행기가 심양비행장 활주로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평양행 입니다. 손님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걸상띠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기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습니다. 비행시간은 45분이 되겠습니다.” 낭낭한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안내원이 가져온 로동신문을 펼쳤다. 일면 머리기사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 수리아랍공화국 대통령이 축천을 보내왔다”고, 사설은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자주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자”는 제목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4선언 7주년이 되는 날이다.
비행기가 압록강을 넘는다는 방송을 들으며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락이 노랗게 익었다. 벼 베는 사람들도 보인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어느새 안내원이 다가와 “손님, 사진은 못 찍게되어있습네다”고 제지한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10분후 종착지 평양에 내릴 예정입니다.
기온은 21도, 날씨는 약간 흐립니다.”내려 보니 순안공항 활주로다. 1945년 분단 이후, 남북 정상이 55년 만에 처음 만나 악수를 하던 역사적인장소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30분,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마주 잡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청사건물이 어느 쪽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셔틀 버스를 타고 5분 정도갔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활주로 공사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각자 소속된 깃발 아래 부지런히 움직이고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흙먼지가 휘날린다. 모래를 나르는 사람들, 시멘트를 등에 지고 가는 사람, 물통을어깨에 메고 오는 모습... 장관이다.
흑백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조선 속도” “결사 관철” “전투명령은 내렸다 폭풍치자 화약에 불이붙은 것처럼” 등, 여러 가지 구호가적힌 배너가 붉은 깃발과 함께 펄럭인다. 도로 포장은 포크레인이나 롤러 같은 특수 장비를 이용하여 매끈하게 만들어 내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저 넓은 활주로를 사람의 힘으로건설하다니. 이곳이 로켓을 쏘아올리고 원자탄을 실험한다는 그 나라 맞아?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공항 청사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새 청사를 짓고 있다. 매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활주로 공사는 2년전쯤 시작되었는데 금년 안에 끝마칠 예정이란다.
입국수속을 끝내고 나니 4시 30분이다. 마중 나온 두 분 안내원과 함께 평양 해방산 호텔에 도착했다. 객실 83개인 3층 건물이다. 오른편에 로동신문 사옥이 보인다. 2층에 방을 배정 받았다. 복도에 전등이 희미하다.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3층 미팅룸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에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다.
◊평양의 첫 날안내원과 함께 우선 맥주를 한 잔씩 나누었다. 대동강 맥주다. 김참사가 해외동포 영접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남쪽 출신 작가로서 3주일 이상 북에 머문 경우는 정선생이 처음이라고 말문을 연다. 일정을 보니, 예정과 달리 소월의 고향 영변 약산등 몇 곳이 빠져있다.
나는 이번 방문이 북녘 땅을 유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왔다고, 돌아가면 본 대로 느낀 그대로 전할 것이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남북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통일의 초석이 되지 않겠냐며, 그 일을 하는데 보탬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조용히 듣던 두 분이 방문 목적에 부합하도록 일정을 조정해보겠다고 화답을 한다.
또 한 가지, 사진에 관해서 의견을말했다. 사진은 마음껏 찍겠으니, 혹불편한 생각이 들면 출구 전에 필름을 검토해 보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했다. 그 문제도 이견이 없었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 방으로 들어와 TV를 켰다. 영어 방송이 나오는데 홍콩사태 등 세계 정세를 방영하고있다. 알 자지라(Al Jazeera) 방송이다.
평양의 첫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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