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경 지금의 이란과 이락의 북부지방에서 아프가니스탄 일대까지를 차지하고 있던 <메디아>라는 아주 강성한 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왕 아스티아케스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딸 만다네 공주가 소변을 보는데, 그것이 흘러 넘쳐서 온 세상을 잠기게 하는 것이다. 사제들을 불러 그 꿈을 물었더니 “만다네 공주의 아들이 왕이 되어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해몽이 나왔다. 아들의 아들이면 자기 핏줄이지만 딸의 아들이 왕이 된다면 이것은 바로 역성(易姓)이어서 왕조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왕은 놀라서 딸을 절대로 왕이 될 수 없는 한 페르시아의 남자를 골라서 결혼을 시켰다. 당시의 페르시아는 메디아의 속국으로 바다가 연한 남부지역의 척박한 땅이었고, 그 남자는 거기 안샨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왕자로 메디아에 불모로 와 있는 신세였다.
얼마 후 만다네 공주가 임신을 하고, 또 왕 아스티아케스가 꿈을 꾸었는데 만다네 공주의 음부에서 포도나무가 자라서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사제(司祭)들은 이번에도 “공주의 아이가 왕이 되어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해몽을 내 놓았다. 왕은 하르파고스라라고 불리는 자기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공주가 아이를 낳으면 빼앗아서 바로 직접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공주가 튼튼하고도 잘 생긴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하르파고스는 왕의 명령이기는 하지만 차마 죄 없는 핏덩이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어서 왕의 소들을 치는 직책을 가진 사람에게 죽이라고 넘겼다. 소치기는 마침 사산(死産)된 자기 아들과 바꿔치기 해서 공주의 아이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것을 믿은 하르파고스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외손자를 죽인 것이 미안했는지 사위를 딸과 함께 안샨으로 돌려보내 사위가 왕이 되게 하였다. 소치기는 공주의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숨겨 키웠다. 이 아이가 자라서 키루스가 된다.
그 후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네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이 이 소치기의 아들을 왕으로 뽑았다. 왕으로 뽑힌 소치기의 아들은 진짜 자기가 왕이 된 것처럼 신하가 된 아이들에게 각기 역할을 주었다. 왕을 호위하는 아이, 여러 가지 보고를 하는 아이, 집을 짓는 아이, 그렇게 노는데 한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것이다. 이 아이는 한 고급관리의 아들인데 자신은 고관의 아들이니 소치기의 아들의 명령을 받을 수 없단다. 그러자 소치기 아들은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고관의 아들을 흠씬 두들겨 팼다. 자기 자식이 소치기 아들에게 얻어터지고 돌아오자 화가 난 고관이 왕에게 고발을 하자 왕은 소치기와 그 아들을 불러 심문하였다. “너는 미천한 자의 아들이면서 나의 중신(重臣)의 아들에게 그런 가장치 않은 짓을 했는가?” 그러자 소치기 아들은 ‘놀이 이긴 하지만 왕의 명령을 거역해서 벌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때 왕은 범상치 않은 용모의 이 아이가 자기 외손자임을 한 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의 아비로부터 사산된 자기 아들과 바꿔치기를 했다는 자백을 받고 신하 하르파고스를 불러서 본인이 직접 죽이지 않고 소치기를 시킨 것임을 알았다.
이 비정한 외할아버지는 이때 다시 손자를 죽일 것인지 고민을 했는데 사제들은 이번에는 이렇게 해석을 했다. “액땜을 했습니다. 비록 아이들 놀이이긴 하지만 어찌했건 간에 이아이가 왕 노릇은 한번 했습니다. 이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아스티아케스 왕은 이 말에 안심을 하고 아이를 부모가 있는 페르시아로 보냈다. 그러나 임무 수행에서 실패한 신하 하르파고스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했다. “내가 명령을 내리고도 마음이 아팠다. 결과적으로 내 손자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왕은 하르파고스를 식사에 초대하고 그의 13살 난 아들을 궁으로 부른다. 왕의 명령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죄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왕의 식사에 초대를 받았으니 고맙고도 황송한 마음이다. 하르파고스가 만찬에 나온 고기 요리를 잘 먹고 나자 왕이 물었다. “요리는 맛이 있었는가?” “맛이 있었습니다” 대답을 하자 왕은 음식 재료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아까 궁으로 보낸 자기 외아들의 시체였다. 왕이 다시 물었다. “무슨 고기였는지 아는가?” 하르파고스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왕께서 사시는 일은 그 어떤 일도 만족합니다.” 신하에게 그의 외아들을 먹게 한 왕도 지독한 사람이지만 자기 자식 고기를 먹고도 태연한 사람은 더 지독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르파고스는 전보다 더 충성을 다해서 아스티아케스 왕을 섬겼고 왕도 이 신하를 계속해서 중용하였다. 그런데 메데 제국은 결국 윗사람이 망하게 한다. (다음 주에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