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native place and among his own kin and in his own house.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모를 때 신기합니다. 신비할 때 아름답습니다. 알고나면 시시해집니다. 속속들이 알고나면 시시함을 지나 경멸의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아니, 저 사람이 그 사람? 허~참!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격언이라기엔 초라하고 속담이라기엔 제법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훠밀리애~러티 브리~이즈 컨템~트." ‘familiar’는 단어 모습 그대로 ‘가족[family]’처럼 친숙하다는 겁니다. ‘intimate, very friendly, domestic, private,’ 즉 친하게 익숙한 걸 ‘훠밀~리어’라 합니다.
흔한 이야기는 ‘a familiar story’요 친근한 어조는 ‘a familiar tone’입니다. 뭐 딱히 신기함이 없다는 뜻이 ‘훠밀~리어’입니다.
’breed’는 동사로 ‘기르다, 번식시키다’는 본래 뜻으로 시작해, ‘~을 일으키다/낳는다’는 뜻도 함축합니다. "Poverty breeds strife." 가난은 불화를 낳는다는 속담이죠. 가난에 찌들다보면 여러가지 불화가 생기게 됩니다.
’contempt’는 명사로 ‘경멸/모욕/멸시’를 뜻합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야 찡~하게 척! 다가올 수 있을까요?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숙함은 경멸을 낳는다? 친해지면 경멸하게 된다? 알고보면 다 그넘이 그넘? 우리말 번역을 더듬던 중 우연히 한자말 표현과 조우합니다.
실로 간명하게 본의를 함축하더군요. 친불경(親不敬)! 친해지면 공경하지 않는다. 숙생멸(熟生蔑)! 익숙해지면 경멸이 생긴다. 친숙하면 모멸감이 생긴다. 친불경(親不敬)이요 숙생멸(熟生蔑)이라! 과연 본래의 뜻이 찡~하게 전해집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그런데, 친불경(親不敬)/숙생멸(熟生蔑)을 논할라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향땅에서 당했던 그 수모를 그냥 모른척 지나칠 수 없습니다. 오늘 인용 지문이 바로 예수님의 그때 말씀인 까닭입니다.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native place and among his own kin and in his own house.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복음서 6:1-4]
다른 곳에서 그토록 존경받던 ‘사람의 아들’이 정작 고향에 돌아오니 경멸과 수모의 대상이 됩니다. 아니, 저자가 그자란 말인가? 저자는 우리 모두 익히 아는 바로 그자 아닌가? 그자가 저자라니? 다들 그렇게 수근대는 게 바로 고향의 안다면서 모르는 자들의 정서요 행태였습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불경(親不敬)이요 숙생멸(熟生蔑)이라! 바로 이럴 때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친하다고 안다고 제법 익숙하다고 그저 경멸하는 투로 수근대다니! 원죄(原罪)인 무명(無明) 속에서 허덕이는 무지중생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음이라!그런데, 이렇게 남 얘기하듯 예수님 고향 사람들 흉보는 우리도 친불경(親不敬)의 덫이나 숙생멸(熟生蔑)의 올무에 자칫 걸려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 옛날 친구가 크게 변한 모습에 ‘아니 네가 바로 그 너냐?’면서 사뭇 경멸조의 언사를 뱉아내는 건 무릇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고향을 멀리하듯, 크게 회심하고 변한 이들은 그다지 옛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안 후에 계속 모르는 무리들과 어울리는 건 서로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native place and among his own kin and in his own house.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불경(親不敬)이요 숙생멸(熟生蔑)이라! 친해지고 익숙해지면 그다지 신비할 것도 없으려니와 다만 경멸하게 되느니라. 물론, 본래 위선덩어리인 인간의 속성을 까발리는 현자의 일갈일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예쁘고 매력적이던 여인도 속속들이 알고보면 그저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모를수록 매력적이죠.
그래서 말하든가요? "알면 다쳐!" “모르는 게 약이다.” 사실, 알고보면, 다 알면서 모르는 척 그렇게 사는 것도 친불경(親不敬)의 다른 구석이요 숙생멸(熟生蔑)의 숨은 교훈입니다. 압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그럼에도, 익히 안다고 경멸하는 누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 또한 그저 익숙하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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