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에레미아의 입으로 하신 말씀에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하고 조서를 내려 가로되 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에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스 1:1-2)”
바빌론에 끌려와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유대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막연하게 전승되던 이사야 선지자, 에레미아 선지자의 예언이 포로생활 70년 만에 거짓처럼 성취된 것이다. 역사에 보면 기원전 539년 바사의 고레스 왕은 1년여의 전쟁 끝에 바빌론을 멸망시켰고, 바빌론으로 개선한 그 해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향을 명령하였다. 그 뿐 아니라 그 편에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약탈된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까지도 목록 하나하나 정확하게 세어서 그대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 고레스 왕이 누구일까? 필자는 그냥 성경에 쓰인 대로 <바사>라는 나라의 <고레스>라는 왕 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 The Histories>를 읽으며 <고레스>가 바로 페르시아의 <키루스(Kūruš: Cyrus the Great) 대왕>인 것을 알았다. 최초의 우리말 성경은 한문 번역판을 옮긴 것이기 때문에 인명이나 지명 같은 것이 좀 우습게 음역이 되어서 <페르시아>가 <바사>가 되고, <키루스>가 <고레스>가 된 것이다.
키루스는 기원전 580년 경 메디아 제국의 속령이었던 페르시아의 안샨이라는 지방의 군주 캄비세스1세와 메디아 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스티아게스의 딸 만다나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친할아버지 이름이 키루스였으니까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면 키루스 2세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그냥 키루스라고 하겠다. 역사에 보면 키루스 2세는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 왕의 메디아를 정복해서 나라의 이름을 메디아에서 페르시아로 바꾸었다. 그리고 오늘날 터키인 리디아 왕국을 합병하고 이어서 바빌론을 또 쳐서 멸망시킨 다음 그 유명한 고레스의 칙령, 정확하게는 키루스의 칙령을 발표한 것이다. 키루스 왕은 2천 6백 년 전 사람인데도 대단한 포용력과 관용의 통치자로써, 피정복민을 노예로 만들지 않았으며, 반란만 일으키지 않는 한 각 지방의 종교와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였다.
“… 나 키루스는 너희(피지배자)의 신(神)인 마르둑(Marduk: 바빌론 최고의 신)의 뜻으로 이 땅의 왕이 되었으며… ,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의 전통과 종교를 존중할 것이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억압해도 차별해도 안 되며, 이유 없이 남의 재산을 강탈해도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도 안되며, 부채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노예로 삼는 일을 금한다..” 당시로 보아서는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혁명적인 통치개념이다.
필자는 전에 이솝이야기로 칼럼을 쓰다가 실존 인물 이솝을 언급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더 자세히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아테네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솔론을 만났고, 솔론과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 대화에 흥미를 느껴 더 읽다 보니 크로이소스 왕을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까지 왔는데, 그 키루스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 유명한 고레스란다. 사유무애(思惟無涯)라고, 필자의 호기심은 꼬리를 물어서 연결을 거듭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중동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했다. 멀리서는 페르시아 제국과 혈투를 벌리던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의 시각에서부터, 몇 백 년을 두고 파르티아(Parthian)제국과 크고 작은 전쟁을 벌린 로마제국의 시각까지, 그리고 이슬람 세력과 충돌하던 기독교 국가들의 시각까지, 우리는 이들 중동지방 국가들을 편협하고 좀 야만스럽게 보는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역사를 읽을수록 이 지역 문화 문명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특히 키루스 대왕에서 우리는 타민족에 대한 그의 이해와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을 읽는다. 사업에서도, 정치 경제에서도, 그리고 문화에서도, 세계를 품으려면 마땅히 가슴을 크게 아주 크게 열어야 한다는 것을 키루스 대왕은 현재에 사는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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