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내원 전 재미한국학교 이사장 비엔나, VA
워싱턴에 리더십이 있는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있다고 단정할 자신이 없다. 그 화려한 주권운동의 성취인 버지니아 동해병기 원년이 바뀌면서 워싱턴-리치몬드 한인사회는 허탈감과 상호불신으로 갈갈이 찢겨진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그리 되었는가? 동해병기 성공의 공적을 독차지 하거나 자기 과시용으로 삼으려고 상대를 비방하고 배제하려는 진흙탕 싸움이 그 하나요, 또 한편으로는 가장 유서 깊은 한인회가 회계 부실로 법적지위를 박탈당했다는 수치스러운 보도 때문이다.
동해병기 성공 요인은 한인의 집중 거주 현상으로 한인 투표 정치력이 선출직의 당락에 영향을 줄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이다. 바꾸어 말하면 동해병기 성공은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 유권자의 집단적 정치력의 공적으로 어느 누구도 개인적 공적으로 주장할 사안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더 많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를 개인 공적화 하지는 못한다. 모든 행위가 단체라는 조직 내의 집단 행위의 일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 한편, 비영리 등록 단체의 중요 관리 항목 1호가 ‘명확한 자금의 입출 기록’인데 이를 등한히 했다고 하면 리더의 제 1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올바른 동포 리더십으로 총체적 단결을 이룩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면 어떠한 리더십을 구할 것인가? 아무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상고하고 선열들의 위대한 이룸에서 그 답을 찾는다.
리더의 필수조건은 공(公) 곧 다수인 국민이나 단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공익정신이다. 이완용만 매국노가 아니다. 단체를 이용하여 개인의 금전적 수익이나 명예욕을 채우는 행위가 곧 매국이요 조직을 약화시키는 이적행위인 것이다. 세계가 찬탄하는 한글은 배우고 쓰기 쉬운 것이 특징인데 그렇게 창제된 이유는 다수인 불쌍한 백성편에 서서 생각한 세종의 공익정신이 깃든 사랑의 글자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조 열사뿐 아니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무명 용사들도 나라 곧 공(公)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쳤는데 공에서 사적 이익과 명예를 챙기려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경계할 일이다.
참다운 리더는 의견과 관점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름은 공익을 내세우면서도 인적 구성에 있어서는 향우회를 하듯이 지방색으로 끼리끼리 뭉치거나 사기업을 하듯이 가족 친척 모임으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다수를 대변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건전한 단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연전에 감동했던 충무공 영화 ‘명량’에는 헐벗은 패잔병과 절간의 승려들, 피난민에서 자원한 선비와 천민의 의병을 하나로 묶어 낸 이순신 통합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사를 보면 하와이 노동 이민 불과 8천여 명이 허리띠를 졸라 매며 1910년 망국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35년간 현재 가치 약 5천 2백만 달러를 모아 상해 임시 정부와 만주 독립군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들의 수입이 노예급 노동 임금임을 고려할 때 우리 이민 선조들은 우리들에게 <결사적인 애국>의 본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광복 후 그들 누구도 공치사를 했다는 기록을 보지 못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첫 해 옥포 당포 한산도 해전을 연달아 이겨 나라를 구해 냈으면서도 정헌대부로 3급 가자(加資)되자 ‘공은 없는데 이름만 난다’고 민망해 한 일기를 남기고 있다. 어리석은 리더는 공을 독차지 하려다 무너지고 현명한 리더는 공을 남에게 돌려 강해진다. 역사의 증언이다. 리더는 자신부터 솔선 참여하는 모범을 보여 워싱턴에 잠자고 있는 고급 전문 지식인 그룹을 동포 운동에 참여시키는 금도(襟度-큰 마음)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대사관은 국제 위상의 표상이며 우리 동포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 자신의 얼굴이 추해 보이기를 원치 않듯이 우리 대사관의 위상이 손상되지 않도록 리더들은 대사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신중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재미동포는 미국의 주민이다. 그러므로 동포 운동을 한답시고 대사관을 괴롭히는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동포들의 자조자립 운동이 필요한 이유이다.
새해 들어 다수의 단체장들이 세대교체 되면서 신선한 협력의 기풍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의사당 앞 아베규탄 운동을 성공리에 완수하여 새로운 워싱턴 리더십의 희망이 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 대한의 의협남아 안중근은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렵게 되자 1907년 8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며 전송 나온 동생 정근과 공근에게 나라를 걱정하는 간곡한 당부의 말을 남겼는데 오늘의 우리에게 그대로 생생한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의 화합이 가장 부족하다. 사람들이 겸손의 덕이 부족하고 허세와 교만으로 일을 하니, 남의 위에 오르는 것은 좋아 하고 남의 아래에 있지는 않으려고 하는 까닭이다. 너희들은 마음을 비우고 선한 것을 받아 들여 자신은 낮추고 남은 존중할 것이며, 사회에 해를 끼치지 말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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