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에리사 세계 탁구제패 환호의 설렘이 있는 곳... 동·서 문화 만남의 장소
▶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민족갈등 보스니아 내전... 주민들 아픔안고 살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③ 사라예보]
발칸반도 알프스 남쪽 끝자락을 따라 들어가면 조그만 산골도시 사라예보에 다다른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Herzegovina)의 수도다. 사라예보는 1973년 이 에리사·정현숙의 세계탁구제패 환호의 추억이 있는 도시라 도착하기 전부터 혹 아는 장소라도 있는 듯 잔잔한 설렘이 일었다.
그러나 그런 설렘도 잠시,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고층 아파트와 건물 곳곳에 숭숭 뚫린 채 남아 있는 수많은 총알자국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눈을 의심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총알자국이다. 어떤 건물은 총알자국을 땜질해 벽이 얼룩얼룩하다. 도로변 곳곳에 불에 타 무너져 내린 건물더미도 있다. 23년전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들이다. 멈칫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하다. 오직 인종 간 갈등으로 10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부상당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내전이다.
가족 중에 죽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내전의 상처가워낙 커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라예보는 아직도 아픈 도시다.
이같은 아픔을 치유하기라도 하듯 지난 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보스니아에 화해를 장려하고 싶다.
보스니아 국민들이 친절과 박애, 자애로운 행동과 태도를 통해 하루하루 평화를 만들어주기를 당부한다”고 호소해 이 곳에 평화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직도 나라 곳곳에 반목의 그늘이 걷히지 않고 있다.
중심가로 들어오면 사라예보를 가로 지르는 작은 강 밀야츠카(Miljacka)강에 이른다. 한국의 청계천 정도 되는 이 강은 많은 다리로 도시가 연결돼 있는데 그 중에 슬픈 역사의 라틴다리(Latin Bridge)가 나온다. 군인사망자만 무려 900만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참사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도화선이 됐던 장소다.
잠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14년 6월28일.
당시 막강한 힘을 가졌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페르디난드(Franz Ferdinand·55) 황태자와 부인 소피(Sophi Chotek·46)가 오스트리아 식민지 유고슬라비아(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방문한다.
청명한 초여름 아침 9시20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 역에 도착했다. 황태자 부부는 6대의 호위차량과 함께 오픈카를 타고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군대열병식장으로 향했다. 이때 황태자의 방문 소식을 접한 사라예보 독립을 원했던 민족주의 열혈 단원들이 황태자 암살 조를 편성해 권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채 거리 곳곳에 매복한 상태였다.
황태자의 차량행렬이 아펠 강둑(Appel Quay) 길로 들어섰다. 예정됐던 첫 번째 암살단원은 겁이 나서 수류탄을 던지지 못하고 포기했다. 10시15분께 두 번째 단원 네델코 차브리노비치(19)가 황태자 부부의 오픈카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반사적으로 운전기사가 속도를 냈다. 다행히 황태자 부부는 무사했다. 이로 인해 수행원 2명과 구경꾼 10여명이 부상당했다.
암살계획이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행사를 마친 황태자가 갑자기 부상당한 수행원이 입원한 병원으로 위문을 가겠다고 했다. 당시 세르비아 총독이었던 포티오레크 장군이 만류했지만 황태자는 병원 방문을 고집했다.
포티오레크 장군은 경호상 지름길을 골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황태자의 운전기사에게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황태자 운전기사는 원래의 길을 따라 갔고 차량이 라틴 다리에 이르자 길이 V자 모양으로 되어있어 하는 수 없이 서행하게 됐다.
그때 암살조의 일원이었던 가블릴로 프란치프가 거사가 실패했다고 낙담하면서 라틴다리 앞 모리츠 실러 카페(Moritz Schiller Cafe. 지금의 박물관 자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프란치프 눈앞에 황태자 부부가 탄 오픈카가 나타난 것이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브라우닝 FN M1910 38구경 권총이었다. 한 발은 황태자에게 명중됐고 한 발은 황태자비 소피에게 날아갔다. (후에 프란치프는 “한 발은 소피가 아닌 옆에 타고있던 보스니아 총독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장군을 저격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됐던 제1차 세계대전의 막을 올리는 총성이었다. <위키백과 참조>
라틴 다리 앞 건물 박물관 벽에는 “From this place on 28 June 1914 Gavrilo Princip assassinated the Heir to the Austro-Hungarian Throne Franz Ferdinand and his wife Sofia” (1914년 6월28일 이곳에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 페르디난드와 그의 부인 조피를 암살하다)고 적혀 있다. 우연히도 그 날은 황태자 부부의 14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결국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고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역사의 다리, 라틴다리를 돌아서면 바슈카르지아 옛 시가지가 나온다.
갖가지 골동품점과 수제품 선물가게들을 지나 조그만 광장으로 들어서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도 있고 세르비아 정교 예배당, 가톨릭 성당도 보인다.
유대교 예배당인 시너고그도 나온다.
사라예보는 아시아 문명과 유럽문명의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동방견문록의 마로크 폴로가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묵었던 여관도 있다. 아픔의 역사만 아니라면 세르비아는 종교와 문명이 만나고 어우러진 매력의 도시다.
◎ 모스타르(Mostar)
사라예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모스타르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네레트바강의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다리로 유명하다. 이 다리는 1566년 오스만 트루크 때 건설됐다가 지난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파괴됐으나 2004년 다시 복원됐다.
1,088개의 하얀 돌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옥빛의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두고 동쪽의 터키식 건물과 서쪽의 유럽풍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오직 이 다리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연간 수백만명이 이 곳을 방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다리의 돌이 맨질거려 미끄러질 정도다.
24미터 높이의 이 다리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돈을 받고 맨몸으로 다이빙하는 사람이 있어 명물로 등장했다. 이곳에서 매년 다이빙 대회도 열린다.
◎ 메주고리에(Medjugorje)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를 지나 30분 더 산길을 가면 1892년 세워진 성 야고보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 인근에서 지난 1981년 6명의 어린이들에게 성모가 발현됐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지금까지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포로투칼 파티마 성당, 멕시코 과달루페 성당, 프랑스 루르드 성당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 메주고리에 지역까지 합쳐 4대 발현지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교황청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현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대규모 야외제단을 만들었다. 특히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 가는 길
LA 공항에서 난스탑으로 가는 항공은 없으며 유럽의 주요 도시를 거쳐 사라예보로 들어간다. 관광으로 갈 경우 주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들어가는데 자동차로 4시간40분(320km) 소요된다. 한인타운 관광회사의 발칸 유럽여행 패키지에 사라예보 관광이 포함돼있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발칸반도 약소국의 비애를 담고 있는 나라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유고연방이 해체된 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국으로 분리된 나라 중 하나다.
인구는 462만명으로 면적은 한반도의 4분의 1 정도. 1인당 국민소득은 4,488달러로 가난한 나라다. 남슬라브족으로 뿌리는 같으나 3개의 종교(보스니아 무슬림 48%, 세르비아계 정교 37%, 크로아티아계 로마카톨릭 14%)가 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1992년 강력한 지도자였던 티토가 사망하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고 세르비아인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전쟁이 벌어졌다.
3년6개월동안 무려 10만명이상이 목숨을 잃고 200만명이상이 부상당했다.
<글·사진 권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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