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방문했다. 한인 이민 110주년을 맞는 해이다. 멕시코 이민자를 ‘애니깽’이라 부른다
애니깽은 스페인어 에네켄(Henequen)의 한국식 발음이다 에네켄은 용설란(龍舌蘭)의 일종으로 키가 2미터에 이르고 단단하고 거세고 가시가 있는 열대 선인장이다. 30도가 넘는 지방에서 자라는데 독기를 품은 방울 뱀들이 밑둥에서 우글거린다. 강도와 끈기가 강한 섬유질이 함류되 있어 잘라서 으깨면 흰 실타래가 되고 이것을 모아 묶으면 튼튼한 밧줄이 되기 때문에 선박용 로프의 주 원료로 쓰였다.
당시 해양업이 호황기를 맞이하여 멕시코 농장주는 수입 좋은 에네켄 생산을 위하여 노동인력을 찾던중 일본 인력 송출 회사와 영국인 브로커의 감언에 속아 부강한 나라에 가서 돈도 벌고 잘살게 해준다는 광고만 믿고 4년 계약 고용자로 가난에 찌든 농민과 도시 노동자 그리고 변화를 갈망하는데 일제 치하에서 조국은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자 1905년 4월4일 한인 1,033명이 영국상선 일포드(lLford)에 몸을 실고 인천을 떠났다.
5월16일 멕시코 유카탄 주의 중심도시 메리다시에 도착하여 에네켄 농장에 배치되어 고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희망은 사라졌다. 멀리 두고 온 가족들과 연락이 단절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형편에서 노예처럼 고된 일에 시달렸다. 실제로 하루 임금도 33전밖에 주지 않았고 그나마 하루 식대 20전을 떼고 지급하였다 한다. 더구나 한인 노동자가 1905년 일회로 끝나는 바람에 고국 사람을 만날 수 없고 고국 소식을 들을수 없는 신세가 되어 애니깽의 외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수고대하던 4년의 노동 계약이 끝나 귀국을 서둘렀으나 이듬해 1910년 한일합병이 되어 국적을 잃고 돌아갈 조국을 상실하여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민 온 1세대 1,033명중 여성이 2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현지 여성과 결혼하여 어쩔 수 없이 코리안 멕시칸이 되었다. 고국과 단절되어 생활해온 까닭에 멕시코 한인들은 문화적으로 거의 멕시코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말, 문화, 습관을 잊고, 모르며 얼굴만 한국인을 닮았을 뿐이다. 그렇게 1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이민 1세대는 물론 2세까지도 대부분 작고한 지금, 손주뻘인 3대가 이미 장년이 됐고 4세, 5세대를 지나 6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애니깽’ 의 110년 이민사는 좌절과 절망을 딛고 도전과 개척의 역사를 이룬 흔적이 멕시코에 역력하다. 한인의 뿌리는 어디 가나 그렇듯이 자녀교육에 열중하여 애니깽 후손들이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다행한 일은 1962년 양국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1978년 상주대사관이 개설되면서 한, 멕시코 관계가 긴밀하고 활발해 졌다. 점차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한국 말과 한글을 가르치고자 하는 노력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기록을 들추기 전에는 1세대 에네켄 노동자 ‘애니깽’ 고난의 이민 역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코리안 멕시칸이 많은 것 같아 서운하다. 현재는 애니깽의 후손들과 대사관 직원, 지상사 가족, 멕시코대학 유학생으로 한인 인구는 형성되어 가고 있다.
소망이 보인다. 많지는 않지만 교회가 능동적으로 활동하며 한인의 뿌리를 찾아 한글을 가르치고 전통과 문화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감사했던 일은 서울 새문안교회가 창립80주년을 기념하며 1966년 부목사를 중남미지역 파송 선교사로 멕시코에 파송한 일이다. 부임한 선교사는 애니깽의 후손과 원주민을 상대로 교회를 세우고 성경학교를 개설하여 선교의 장을 열어 오늘 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돌아보면 멕시코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남미 대국이다. 인구 1억1천여만명으로 세계 11위의 국가요 면적 또한 방대한 나라다. 110년전 에네켄 농장에 고용되어 힘들고 서럽고 외롭던 애니깽! 그들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을 날이 오고 있다. 그들의 후예가 정계 법조계 학계 의료계 예술계 등 각 분야에서 꼬리아노 임을 내세우며 리더로 일하고 있다. 멕시코의 주인이요 주역이 될 날을 바라보며 화이팅! 애니깽!을 기원하며 공항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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