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된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의 유프라테스 강가에 모여 빼앗긴 조국을 그리워 한다. )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산과 언덕 위로 날아라.
조국의 흙위로 부는 바람은 부드럽고 향기롭구나.
요단강 뚝 푸른 언덕과 버려진 시온 탑에도 가보자.
오, 사랑하는 조국, 빼앗긴 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그대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위의 가사는 베르디 작곡 오페라 <나부코 NABUCCO>중에서 3막2장에 나오는 <바 펜시에로: Va, Pensiero >라는 합창곡으로 우리에게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것이다.
여러번에 걸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신을 섬긴 죄로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이나 노예 생활을 한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어느날, 어쩌다가 유프라테스 강가에 모여서 피를 토하듯 뻬앗긴 조국을 그리워 하는 장면의 곡이다. 몸은 못 가지만 내 마음 만이라도 날고 날아서 내 조국의 요단강 강변 푸른 언덕과 파괴된 채 방치된 예루살렘 성전에도 가 보잔다.
나부코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에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 바빌로니아의 느브갓네살 왕을 이태리 식으로 줄여 부른 이름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매스터코랄 합창단에서는 오는 11월 정기 공연을 앞두고 좋은 곡 몇을 골라서 요즘 부지런히 연습중인데, 그중 하나가 이<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공연에는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해서 악보 없이, 그것도 이태리 원어로 부른다고 해서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었는데 이태리 어에 능숙한 솔리스트들이 각 파트별로 반복해서 발음을 지도하는 덕분에 요즘은 모두들 어줍잖게 원어로 따라 부른다. 우리 파트의 솔리스트인 이우정 테너는 가사를 100백번을 크게 소리 내서 읽으란다.
그러면 가사가 곡과 더불어 익혀 진다고. 그것도 큰일이다. 나는 20번 밖에 못 했으니 앞으로 80번을 더 읽어야 한다. 이 노래를 부르면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노예들의 애잔한 슬픔이 우리들 마음에 그대로 젖어 와서 단원들 연습 분위기가 한결 숙연하다.
<나부코>를 작곡할 무렵의 베르디는 엄청난 시련에 빠져 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데다가 그의 두 번째 오페라 작품인 <하루만의 임금님> 공연이 무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부코>의 대본을 받아 본 베르디는 처음부터 대단한 의욕을 느끼고 작곡에 들어가서 1841년 전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베르디가 이 대본에 매혹된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당시 북부 이태리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 이태리 국민들의 외세 배격과 민족 통일의 염원이 그 만큼 간절했고, 또 하나는 환란 중에서도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고통에 견디도록 주님 도와주소서” 하는 유태인들의 기도가 절망 가운데 있었던 베르디 본인에게도 큰 은혜가 된 것이다.
“이 대본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서글픔이 엄습해 왔다. 너무나 괴로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성급하게 대본을 넘겨보다가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에 이르자 가슴속에서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흥분으로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 대본을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가 밤을 꼬박 새웠고, 아침이 되자 나는 대본을 다 외워버린 것 같았다.” 베르디의 회고이다.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있었던 초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3막에 불려지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청중들의 심금을 울려서, 지금도 이태리의 제2의 국가(國歌)로 불리울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이 작품에서 성공한 베르디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등을 연이어 히트시킨다. 베르디는 이태리의 자랑이었고 온 국민의 자존심이었다.
1901년 베르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는 20만의 인파가 모였고, 시민들 모두 연도에 나와서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면 베르디의 운구를 전송했다고 한다. “날아가라 … 황금빛 날개를 타고..”
아테네의 철학자 솔론은 ‘사람은 죽을 때를 봐야 그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안다’고 했다. 베르디의 생애 역시 사는 동안 여늬 사람처럼 좋은 일, 궂은 일에 굴곡도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는 온 국민이 사랑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았고, 모두의 애도 속에서 세상을 떠나갔다. 그러고 보면 그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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