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Joy /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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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lept and dreamt that life was joy. 잠들어 꿈꾸니 삶은 기쁨이더라.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선사했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짤막한 말씀을 읽습니다. <기쁨>이란 제목을 달고 방금 이메일로 날아든 “Quote of the Day,” <오늘의 말씀>입니다. “인생의 기쁨이란?” 질문에 답하며 담담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Rejoice evermore! "항상 기뻐하라!" 사도 바울의 명령입니다. 가끔 기뻐하는 게 아닙니다. ‘늘!’ 기뻐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살면 매순간이 기쁨으로 넘쳐나게 될까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리지 말고 ‘늘/항상’ 기뻐하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Pray without ceasing."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고, "In every thing give thanks."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늘이 사람에게 내리는 천명(天命)이라 합니다.
Rejoice evermore! "항상 기뻐하라!"사람 사는 가운데 ‘기쁨’이란 과연 뭘까요? 딱히 기뻐할 만한 일이 따로 있는 걸까요? 기쁨의 눈물이 넘쳐나리 만큼 감동적으로 기쁜 일이 인생 가운데 얼마나 있을까요? 가만히 더듬어보건대 제 인생에서 그토록 기뻤던 일이란 과연 무었이었을까 ...... ? 글쎄요, 특별히 분통터지게 서러웠던 일도 별로 기억되지 않거니와 유난스레 기쁨에 넘쳐 환희작약했던 기억도 그저 가물가물. […… 타고르의 말씀을 계속 읽습니다.]
I awoke and saw that life was service. 깨어 보니 삶은 섬김이더라.
결국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 애매한 가운데, 시인은 인생이 곧 봉사요 섬기는 거라 노래하고 있네요. 꿈꿀 때는 인생이 곧 기쁨이라더니 이제 꿈 깨고 보니 인생이란 섬기는 데 그 의미가 있더라 전합니다. 몽중엔 기쁨이요 비몽중엔 섬김이라? 깨어보니 삶은 봉사더라? Really?
언젠가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다만 두개로 정리하신 바 있습니다. 어느 율법사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에서 큰 명령은 무엇이니이까?" Master, which is the great commandment in the law?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만 "2계(二戒)"로 요점정리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희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이게 첫째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혼신을 대해 섬기라는 겁니다. 그리고,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이게 둘째 계명입니다. 사람을 하늘같이 대하라는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 또한 그러합니다. 事人如天(사인여천)! 결국, 하늘을 우러르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그렇게 네 글자가 곧 예수님의 "2계(二戒)"입니다. 하늘과 땅을 고루 ‘섬기라’는 말씀이 바로 타고르의 꿈깬 현실이기도 합니다. 깨어보니 인생은 하늘과 땅을 골고루 섬기는 것! [그럼 이어지는 마지막 문장은?]
I acted and behold, service was joy.
실천하니, 보라, 섬김이 기쁨이더라.
꿈 속에서 본 기쁨, 그리고 꿈깬 현실의 봉사, 그렇게 행하고 나니, 보라, 섬김이 기쁨이어라! 시인의 함축이 노련합니다. 쉽고 간단한 단어와 표현으로 행간(行間)의 저의(底意)를 감동적으로 나타냅니다. 첫 행에서는 ‘기쁨’, 둘째 행에서는 ‘섬김’ 그리고 마지막 셋째 행에서는 ‘섬김이 곧 기쁨’이라는 묘한 등식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고즈넉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읊고 있습니다. [자, 모두 붙여 죽~ 읽어봅니다.]
I slept and dreamt that life was joy. I awoke and saw that life was service. I acted and behold, service was joy.
잠들어 꿈꾸니 삶은 기쁨이더라. 깨어 보니 삶은 섬김이더라. 실천하니, 보라, 섬김이 기쁨이더라.
Life was joy. Life was service. Service was joy. 무슨 수학 공식같기도 하고 또 삼단논법같기도 한 이 싯귀가 타고르의 육성으로 귓속에 듭니다. 귀로 들어 가슴에 품으니 홀연 환해지는 진리. "항상 기뻐하라!"는 뜻이 조금 깨우쳐지는 듯? ‘항상’ 기뻐하기 위해선 ‘늘’ 섬겨야 한다는 사실이 확연해지기 때문입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명령이 왜 "항상 기뻐하라!" 뒤에 따라붙는지 그 까닭도 환해집니다. 인생의 의미를 따져 묻기 전에, 그저 섬기다 보면, 어느새 ‘항상 기뻐하는’ 인생이 나도 모르게 펼쳐지더라. 보라[Behold], 그렇게 노래하는 시인. 꿈 속의 기쁨이 꿈 밖의 섬김이요, 하늘과 땅을 섬기는 게 곧 인생의 참된 기쁨일진저. 단 세 줄의 각성(覺醒)! 아, 도피안(到彼岸) 시인의 신비여.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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