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의 동창 두 분의 내외와 함께 한 점심 자리에서 들은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심각한 의미와 영향을 내포할 수 있어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동석자들 중 한 분이 자기의 지인에게서 들었다는 말을 전해준 내용 때문이었다. “남 변호사는 정직하고 양심적이어서 다 좋은데 한 사건을 의뢰했더니 재판 당일 사건에서 손을 뗀다고 해서 황당하고 낭패스러웠다”는 것이다. 칭찬해주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고객의 이익을 추구하기는커녕 난관에 몰아넣는 무책임한 몹쓸 변호사라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몹쓸 변호사를 누가 찾겠는가? 거의 30년 동안 겪어온 고객들의 사건들을 머리 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 결과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이었다. 재판 당일 판사에게 거짓말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에 거절하고 그 사건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변호사 윤리강령에 의하면 자신의 고객이 거짓 증언을 할 것을 변호사가 알게 되는 경우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그 사건에서 사임할 것을 허락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살인 같은 중범죄 혐의자라도 무죄를 항변하면서 검찰로 하여금 범죄 사실을 이치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하라고 요구할 헌법적인 권리가 있기는 하다. 그런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도 고객의 허위 증언을 전개시켜서는 안 된다. 위증 교사죄도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자의 체포 때 경찰이 운전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못 열거했다든지 일직선을 걸으라 했더니 좌충우돌 식으로 비틀거렸다는 등의 증언에 더해 알콜 측정 호흡기나 혈액 검사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중범죄에 대한 재판보다도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나 자신이 내 직업이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거짓을 철저하게 기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서에 입각한 것이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6장 16-19절)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생활을 하자면 거짓말을 배척해야 한다.
과거를 회고해 보면 나도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 큰일 날 뻔한 경험이 있다. 외국어대학 2학년만 마치고 동아일보에 입사해서 외신부 기자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이니까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없어 3학년과 4학년 때의 성적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국제 로타리 구락부의 장학금 신청 기회가 있어 언감생심 하버드 정치학과인지를 지망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학교 성적이었다. 머리를 짜냈다는 게 결국 대학 성적을 뻥튀기 하겠다는 졸렬하고도 사악한 생각이었다. 대학 재단의 이사장을 만나 상의 했더니 졸업생 배출이 불과 3년, 4년의 일천한 학교 역사에 비추어 하버드에 도전한다는 것이 학교 이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지 학장에게 연락해줄 터이니 그와 상의해보라는 이야기였다. 내 기억으로는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있다가 장면 정권 때 주불공사를 지냈던 최완복 씨를 학장실로 찾아가서 성적을 올려달라고 뻔뻔스러운 부탁을 하게 되었다. 최학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젊은 사람이 학교 성적부를 조작하는 거짓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정직하게 살아야 올바른 인생이라는 충언을 해주셔서 나를 성적위조범죄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구해주신 게 두고두고 감사하게 생각된다.
정도를 따라 열심히 외국 유학의 길을 모색하게 된 전후의 배경이다. 1963년 풀브라이트 장학생 모집에서는 신문학 전공으로 당시의 KBS 제2방송국장이던 이재현 씨와 경쟁이 되었으니까 그 분이 선발된 것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1964년도에도 토플과 영작문 등 성적이 비교적 좋았던지 신문학 부문에서 코리아 헤럴드 논설위원이던 민영빈 씨 등 다섯 명의 최종 후보들을 제치고 선발되어 미국에 오게 되었다. 만약 최완복 씨가 재단 이사장의 묵시적 동의에 따라 나의 성적표를 변조해 주었다면 그것이 혹시나 발각될까봐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생활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은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5장28-29절의 약속처럼 예수께서 기억의 무덤에 있는 자들을 부활로 불러내시는 때가 와서 최완복 씨를 만나게 되면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