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텍사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엄청난 서남부지역의 땅을 멕시코로부터 거의 공짜로 취득한 1848년 2월 4일보다 불과 며칠 전인 그해 1월 24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조금 떨어진 Coloma 라는 곳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1848년이 되기 전에 캘리포니아에는 “미국인”들이 이미 그 지역에서 살고들 있어서 사실상의 미국영토나 진배없었다. 법적으로 아직 멕시코의 영토이었던 때에 금이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그 후에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스위스 사람으로서 대성공을 꿈꾸고 알래스카와 하와이 등을 거쳐서 북미주로 이민 온 John A. Sutter라는 사람은 1839년에 멕시코 정부로 부터 지금의 캘리포니아 주 수도인 새크라멘토 시내의, 나중에 Sutter’s Fort 라고 이름 지어진 지역의 땅 15만 에이커를 양도받았다. 그는 견고한 축성을 한 후 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통상기지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지역을 대농장으로 개발할 원대한 계획을 하고 있었다. 새크라맨토 강의 수력을 이용해 운영할 수력제재소 Sutter’s Mill in Coloma 를 짓던 중이던 1848년 1월 24일에 목수 James W. Marshall 이 수로에서 금빛이 나는 광물을 발견해서 가지고 왔다. 샌프란시스코의 연구소에 보내 분석해본 결과 금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는 금 발견의 소문이 나면 딴사람과 합작으로 대농장을 개발하려는 꿈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을 알고 금이 발견된 사실을 숨기고자 하였으나 3월 달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에 금 발견 소식이 보도되고 그해 8월 달에 뉴욕 헤럴드 신문에 금 발견 뉴스가 보도되었고 또 연방정부가 직접 조사를 마친 후 그해 12월에는 Polk 대통령이 금 발견 소식을 국회에 보고했다.
금 발견의 소식이 나자 Sutter’s Fort 의 직원들이 전부 금을 캐려고 떠나버려서 기지 운영을 못하게 되었다. 사방에서 금을 캐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1849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들을 ‘Forty niners’ 라고 불렀는데 처음에는 미국의 동부 전체에서 오기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미국전국과 남미, 호주, 중국에서까지 노다지를 캐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건너왔고 이들 중에는 캐리비언 섬에 서온 불란서 공무원들 까지 있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의 수산업도시 Nantucket 에서는 주민 4분의1이 캘리포니아로 옮겨가기도 했다. 당시에는 금광개발권에 관한 법률도 없어서 “내 땅이다”라고 먼저 말뚝을 받는 사람이 금광개발권을 행사했던 모양으로 골드러시가 일어난 후에 Property Rights 에 관한 법률들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포장마차로 집단이동 하였다. 우리가 흔히 보던 서부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하면 되는데 이 포장마차들은 말이 끌었던 것이 아니고 대게 세 마리의 소들이 끄는 것으로써 길이 10.5 피트에 높이 8.5 피트가 되는 크기로써 최대 1톤의 하중을 운반하였다.
이들은 많은 포장마차가 집단적으로 행동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주 도중에 사고가 나거나 험악한 지형을 지날 때에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했었던 탓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집단으로 움직여야만 도중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습격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들이 저녁에 쉴 때에는 포장마차 들을 원으로 쭉 주차시켜놓고 중간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남자들은 마차에서 미국원주민들의 불의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Pilgrim들이 처음 미국에 올 때 타고 온 배에서 헌법인 ‘맹약(Mayflower Compact)‘ 을 작성하고 서명하였듯이 이들 포장마차 집단들도 맹약을 작성해서 서명을 하고 여행기간 동안의 법률로 지켰다고 한다.
단장격인 캡틴(Captain)을 투표로 뽑았고 단장은 행정 재판의 권한을 갖고 여행 도중에 일어나는 장례, 결혼 등을 주례 하였으며 포장마차 집단의 성패가 이 단장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미주리 강 하단에 있는 Independence 시에서 포장마차 집단을 구성해서 캘리포니아 주의 Sutter’s Fort로 2천마일이나 되는 길을 떠나면 시속 2마일인 이 집단들은 운이 좋으면 5개월 만에 목적지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의 총 이주자들의 절반정도가 이런 육로로 갔다고 한다.
두 번째의 이주 방법은 미국동부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 만으로 들어와서 파나마에 도착하면 배를 내려서 훗날 파나마운하가 건설된 경로를 따라 모기가 들끓는 밀림을 헤치고 태평양이 나올 때까지 걸어서 간 후 당시 영국 사람들이 운행하던 증기기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것이었다.
걸어서 가야만 했던 이 밀림지역은 말라리아,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창궐했던 곳이라고 한다. 아마 이 이주방법으로는 소규모 집단이나 어쩌면 개인도 갈수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 이주방법도 상상을 초월한 험난한 것이었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서부금광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하여 아주 배를 사서 같이 타고 남미의 하단 Cape Horn을 돌아서 태평양으로 샌프란시스코까지 북향하는 것이었다. 보통 5개월 내지 8개월이 걸렸다는데 전문 선장이 필요했으며 최단기 여행기록으로는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89일이 걸린 것이었다고 한다.
역시 이 배안에서도 탑승자들은 맹약을 맺었고 선장의 통솔에 따라야 했었다. 이때의 여러 가지 일화들 중의 하나에는 열여덟 살 된 신부가 남편선장이 향해 도중 병이 들어 눕게 되자 혼자서 2천 톤짜리 목선을 운항하여 5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는 눈물겨운 성공담이 있다.
당시에는 장거리를 가장 빠른 속도로 운항할 수 있는 배를 설계하고 조선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비행기 설계사만큼이나 숭앙받는 직업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물을 날렵하게 자르고 날아가는 돛단배를 Clipper라고 부르는데 시간을 자르는 것 같이 ‘자른다 (clip)’고 해서 이때 생긴 용어이다.
미동부에서 까지 배들을 타고 몰렸으니 짧은 기간 동안에 샌프란시스코에 얼마나 많은 배들이 모였었겠는지 상상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들 이주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모두들 배를 버리고 금광을 찾아 떠나갔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이 배들을 부수어서 매립지에 묻기도 하고 아직 쓸 만한 배들은 주택, 창고, 감옥 등으로도 썼다고 한다.
1846년에는 인구가 200명 정도의 작은 촌락이었던 샌프란시스코가 1852년에는 인구 3만6,000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동안에 연인원 30만 명이 이주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획천금의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올 때보다는 떠날 때 주머니에 조금씩 담아가지고 갔다고 한다.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광부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때에 금을 파는 용구들이나 잡화상 등을 일찍 차린 사람들이었고 금광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굵은 모래알처럼 땅에 묻혀있던 금을 긁어모으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하천에서 물속의 모래를 체로 쳐서 사금을 걸러내는 방법이 사용되었으나 1850년에 이르러 금이 차츰 고갈되자 큰 금광회사들만 존속하였다 한다.
금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의 정착으로 샌프란시스코북쪽에 작은 도시들이 생겨나는 등 골드러시는 캘리포니아의 성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금이 차츰 고갈되어 골드러시가 끝나갈 무렵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새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는 미국적 병폐가 이때에도 머리를 들어서 남미와 아시아에 서온 채금꾼들을 추방하자는 인종차별적인 운동도 일어났었다.
골드러시는 부정적인 결과도 남겼다. 한 치의 땅도 남기지 않고 두더지처럼 뚫고 다니는 채금꾼들 때문에 상당한 자연파손이 있었다. 그곳에서 살던 미국원주민들은 사냥하고 농사지을 터전을 다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원주민 추방을 위해서 원주민 촌락을 자주 습격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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