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맞아 우리 아이들 넷이 다 막내 집에 모였다. 아이들이 넷이 있어도 다 함께 모이기는 쉽지 않아서 난 이미 함께 모였다는 그 사실만 가지고도 어머니날의 선물을 받은 듯 기분이 흐뭇했다.
막내 쟌은 나와 제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집을 늘 예쁘게 가꾸려하거나 변화를 좋아해서 쿠션 같은 작은 소품 하나를 가지고도 방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점이나, 무엇보다 정원을 손질하고 꽃들을 가꾸는 등 그 집에 갈때마다 나날이 정원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내 기분도 절로 좋아진다.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 막내네 정원을 구석구석 살피다가 아! 하고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수영장 뒷쪽 담장 옆에 보지 못하던 벤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벤치는 레드우드로 만든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러브 벤치이다. 양 의자 가운데 탁자가 있고 의자 밑에는 작은 바퀴도 달렸다.멋진 쿠션도 있어서 앉아보니 너무 편해서 막내가 손재주가 있는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완전하고 아름다운 벤치를 만들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쟌, 이 벤치는 옛날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 어떻게 꼭 닮았니?”내가 묻자 그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그는 지나간 추억을 더듬으며 노스탈지에 빠져 이 벤치를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옛날 그가 어릴 때 우리 부부는 이런 벤치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수십년은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애는 그 벤치에 아주 특별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젊었을 적 옆집에 제인이라는 할머니가 이웃으로 살았는데, 남편이 텍사스로 발령이 나고 우리 가족이 이사를 떠나기 전 제인 할머니는 우리가 떠나는게 너무 아쉽다고 선물로 이것과 똑같은 가든 벤치를 준 것이다. 우리는 그후 오랫동안 이 벤치를 큰 보물처럼 이사를 갈때마다 가지고 다니면서 그 할머니를 추억했다.
남편은 이 벤치를 누구보다 사랑해서 그가 잔디를 깎고 쉴때면 거기 앉아 시원한 맥주도 한잔 마시고 라디오도 듣곤 했다. 그 당시 삼십대의 남편은 그 더운 기후 속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늘 정원 일을 했다. 어느때는 큰 아이들도 거들었다. 그런 날 오후엔 늘 바베큐도 해먹으면서 이웃들과 즐겁게 살았다.
우리 집엔 파들이라는 이름의 토이 푸들 강아지가 있었는데 늘 남편이 앉은 의자 밑이 그 강아지의 자리였다. 일년에 한번쯤 시부모님이 다니러 오실 때도 시아버지의 자리는 늘 그 자리였다. 푸른 등꽃이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 아래서 시아버지는 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잠깐 졸기도 하시면서 앉아 계셨다. 쟌이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쯤엔 사아버지는 막내의 손을 잡고 새로 짓는 집들을 구경하러 다니셨다. 그 동네는 매일처럼 새로 집이 생기는 신흥 붐 타운 동네였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그날이 그날’인 한 시골 도시에서 일생을 살고 있던 시부모님한테 이런 동네는 참 신나고 흥미롭기 짝이 없는 곳이었던 것 같다. 가끔 집을 짓는 사람들이 당신 집이냐고 물으면 시아버지의 대답은 ‘아이위시! 마이 홈!’이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말씀 하시곤 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작은 초가집에 비하면 아들 집은 크고 화려하고 차고에는 멋진 차도 두대가 있고, 넓은 정원에는 철따라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과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들이 미국에서도 굴지의 석유 회사에 다니고 있는 엘리트라는것이 큰 위안이 되었고 아마 으쓱해지는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제니! 난 네가 참 부럽다. 남편한테 묻지 않고 돈도 척척 쓰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수 있으니 말이다"시어머니는 가끔 내게 이런 말을 독백처럼 하시곤 했다. 일생을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 나시고 여직껏 남편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사시는 분 입장에서 보면 작은 동양 며느리가 무엇이던지 내 마음대로 하고, 거침 없이 사는 모습이 부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난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용돈을 몰래 손에 쥐어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나 사위들 모두 흰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것이 난 정말 자랑스러워!" 시어머니는 늘 자랑스레 이 말씀을 하셨다. 한평생 노동자로만 살아오신 남편 밑에서 네 아이들을 힘겹게 뒷바라지 하며 산 자신의 삶이 어느때는 너무 한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그들도, 친절하던 제인 할머니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들이 남긴 것이 있다면 우리들 마음 속에 추억을 두고 간 것이다. 어느 멋진 봄날 우리들은 스테이션웨곤을 타고 산안토니오에 있던 리버워크와 알라모를 보고,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그 넓은 텍사스의 평원을 달려 집에 돌아왔지.
이제 어느날 우리들 모두가 그들처럼 또 추억을 남기고 떠나 갈 것이다. 아들애는 자신이 만든 그 벤치를 보며 어떻게 우리들을 기억할까.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에 그때는 함께 있지 못해도 우리가 남긴 체취나 추억들은 그 가든 벤치와 함께 아들의 가슴 속에 보석처럼 언제까지나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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