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에게도 마침내 공식 라이벌이 생겼다. 지난주 2016년 대선 민주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이다.
힐러리가 위협을 느낄까? 전혀 아닐 것이다. 무시해도 좋을까? 그건 더욱 아닐 것이다.
샌더스는 승리확률이 제로에 가깝긴 해도 대선전에 끼칠 ‘임팩트’는 만만치 않을 수 있는 후보라는 뜻이다.
세계적인 명성과 높은 지지도, 엄청난 자금과 거대한 조직을 이미 갖춘 힐러리에 맞서기엔 자신이 너무 처지는 언더독이라는 것을 샌더스도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당적도 민주당이 아닌 무소속이다. 그러나 30여년 정치역정의 막바지에 민주당 보다 더 선명한 진보 어젠다를 들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헝클어진 백발의 73세 포퓰리스트는 겁내는 기색이 없다.
“우리 캠페인은 버니 샌더스에 관한 게 아니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는다’며 일어나 국가와 정부는 소수의 억만장자가 아닌 우리 모두에 속한 것이라고 외치는 풀뿌리 무브먼트다…우리에겐 정치적 혁명이 필요하고 난 그 노력을 앞장 서 이끌고 싶다” - 돈이나 조직 뿐 아니라 카리스마조차 없는 그를 ‘풀뿌리’에 어필하게 하는 힘은 ‘진정성’이다.
요즘 후보들에게선 좀처럼 찾기 힘든 두 가지, 그러나 유권자들이 갈망하는 두 가지 - 확고한 신념과 진정성이 그의 큰 자산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한다. 그의 겉과 속이,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일관된 정치행보에서 쌓여진 신뢰다.
마틴 루터 킹목사의 민권행진에 참가하고 베트남 반전운동에 앞장서며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1981년 버몬트 주의 최대도시 벌링턴에서 현직을 누르고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공약대로’ 부유층 아닌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펴면서 4선 시장, 8선 연방하원의원, 2선 연방상원의원을 역임했다.
첫 시장선거 때 단 10표차로 신승했던 그는 2012년 상원 재선 때는 71% 지지의 압승을 거두었다. 전국무대에선 아직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버몬트 주에선 가장 인기 있는 정치가로 상원선거 자금의 60% 이상이 개인들의 소액기부였다.
거리낌 없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샌더스가 이번에 내세운 공약은 지난 의정생활에서 꾸준히 추진해온 어젠다들이다. 부유층 증세, 월스트릿 규제와 초대형 금융기관 분할, 공공기금에 의한 선거, 메디케어 식의 정부운영 전국민 의료보험, 무료 대학교육, 소셜시큐리티 혜택 확대…열광하는 민주당내 리버럴 진영만이 아니라 모든 ‘보통사람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는 정책들이다.
‘대선 후보’ 샌더스가 특히 강조하는 이슈는 ‘부의 불평등’과 ‘억만장자들의 금권선거’다. 요즘은 공화당 후보들조차 소득의 불평등을 지적하는 시대이지만 민주당의 힐러리에게도 ‘월가의 탐욕’이나 ‘부도덕한 경제’를 해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억만장자의 지원을 받기위해 오디션까지 감수하는 공화 후보들은 물론 힐러리 또한 큰손 기부가들과의 유대는 끊을 수 없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대선 후보라면 다음 3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새로 창출되는 소득의 99%가 상위 1%에게 가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당한가?”“상위 0.1%가 하위 99% 전체와 같은 양의 부를 소유하는 것은 건강한 경제인가?”“한 가족이 9억달러를 쏟아 부으며 선거를 사려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있는 것 아닌가?”상당수 유권자들은 그를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무시할 것이다. 힐러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의 진보정책 압박에 좌클릭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극단적 주장과 비교되며 오히려 ‘합리적 중도’로 본선에 대비하는 효과를 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샌더스의 출마로 민주당 경선이 ‘힐러리의 대관식’이 될 염려는 없어진 듯하다. 대신 6번의 후보 공개토론을 통해 힐러리와 샌더스의 불꽃 튀는 설전이 전개된다면 선거는 한층 흥미로워질 것이다. 또 다른 후보들도 가세해 압박하면서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 여러 이슈에 대한 힐러리의 입장도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너무 많이 일하면서 너무 적게 버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 ‘억만장자 계급’과의 전쟁을 선포한 샌더스는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허세가 아니다. 출마선언 첫날의 반응이 놀랄 만 하다. 3만5,000명이 온라인 기부에 참여 150만달러가 모금됐고 17만5,000명이 자원봉사에 지원했다.
60%를 넘는 힐러리에 비해 한 자리 숫자에 불과했던 샌더스의 지지율도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14%와 12%로 뛰어 올랐다. 초반 경선에서 20~25%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다면 샌더스의 존재는 이슈의 방향을 주도하며 대선 캠페인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후보들에게서 껄끄러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만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토론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에게도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투표하기 전 숙고할 기회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