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조리 주의 퍼거슨 시에서 일어났던 폭력시위와 비슷한 사건이 며칠 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도 있었음은 이미 언론을 통해 상세히 알려졌다. 경찰의 체포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사망한 프레디 그레이라는 흑인 청년의 장례식 날, 시내에서 벌어진 경찰에 대한 항의시위가 급기야 대규모 폭력사태로 번진 것이다. 경찰차들을 불에 태우고 인근 건물들에 무작위 방화와 약탈을 감행해 많은 사업체들이 피해를 당했다. 이를 진압하던 경찰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볼티모어 시내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주방위군이 동원되었다. 초중고교에는 휴교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프로야구팀인 오리올즈의 경기가 연기되다 못해 수요일 경기는 아예 팬들의 구장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 가운데 치루어졌다. 야구장 근처의 사업체나 관갱객이 많이 찾는 이너하버 근처의 사업체들에게 큰 타격이 있었다고 한다. 사업체 손실로 인해 생계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인들도 제법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상점들이 파괴되거나 문을 닫아 지역주민들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더 이상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없는 불편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마침 지난 주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23년전 로스엔젤레스에서 일어났던 4.29 폭동을 소개했었다. 학생들이 이제 겨우 9학년이기에 23년 전의 일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을 것 같고, 특히 미국 내의 우리 한인사회에서는 잊혀져서는 안될 사건이었기에 소개했다. 나의 학생들 가운데 그 사건을 들어 본 적이 있는 학생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 학생의 부모님들이 당시에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셨었기에 가까이에서 그 사건을 접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폭동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본 학생들은 상당히 놀랐던 것 같다. 그런 폭동이 한인들의 생활 중심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왜 한인들이 그런 피해를 입었서야 했느냐고. 그 질문에 길게 대답할 시간이 없어 우선 그 때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마침 한인들의 사업체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폭도들의 주를 이루던 흑인들에게 지역 한인사업주들이 좋지 않게 보였던 점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렇게 보였던 점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떠나 근본적으로 그 당시 폭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그런 폭동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부언했다.
이번의 폭동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볼티모어 시의 흑인 시장이 폭동의 바닥에 깔린 이 근본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23년 전 로스엔젤레스 폭동 때와 다른 것이 없었다. 물론 인종차별이나 편견, 갈등 등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들은 사실 부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빈곤과 실업 그리고 교육이다. 폭도들과 그들의 거주 지역 주민들의 이런 근본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폭동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 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해결책을 누가 찾아 보아야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 소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다. 또한 이 문제들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나 사회적 책임 윤리에 대해 결론 없는 논쟁들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불만을 표하거나 의사표시를 할 때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당한 내용의 불만이나 의사표시라 하더라도 주위로부터 공감을 살 수도, 상대로부터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 조성으로 인해 역효과만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지난 20년간 교육위원 등의 공직 활동을 하면서 목격하고 경험한 바, 미국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히 부유한 곳으로 알려진 페어팩스 카운티를 비롯한 이 곳 워싱턴 지역에서도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커뮤니티 전체가 나서서 진정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곳에서도 퍼거슨이나 볼티모어에서 보았던 폭동이 안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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