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문의 중견 언론인 칼럼이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이런 만화를 봤다. 남녀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정치인이야. 난 정직해.’ ‘저는 몸을 팔아요. 그런데 처녀예요.’ 한국 정치가 딱 이 꼴이다.” 전 경남기업회장이던 성완종 씨의 메가톤급 ‘뇌물 수수자 명단’ 노출에 뒤따르는 한국 정계의 위기에 대한 칼럼에서다.
그런데 경남기업이라는 회사 이름이 나에게는 반세기가 넘은 시절에 대한 추억을 더듬게 했다. 1959년에 동아일보 견습기자로 채용되어 1년1개월 후에 내가 정식 기자로 발령난 것은 외신부였기에 정경부와 사회부 기자들에게 드물지 않았던 촌지(寸志)나 떡고물이 내 주변에 있을 가능성 조차 없었다. 당시 신문사들 가운데는 최고 보수를 준다던 동아일보의 기자 월급이 미화로 환산하여 40여불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로서는 새벽 7시부터 8시까지는 명동에 있었던 ELI에서 시사 영어를 강의하던 게 고작 부수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남기업 사장 댁 따님 하나의 영어 과외 선생 자리는 정말 감지덕지 할 노릇이었다. 나를 소개한 피아니스트의 말대로 딸 셋의 가정교사가 과목별로 있어 일곱인지 여덟인지 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일제시대 고관들의 주택지였던 신당동, 장충동에 위치했던 사장 댁은 정말 고루거각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것은 너 댓 된다는 그 집 식모들의 솜씨가 아니라 사모님이 손수 만들어주신 진수성찬이었다. 이름도 모를 요리가 상다리를 부술 정도로 차려져 나오던 이유는 사모님이 싱가포르 출신 중국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후에 나는 사장님을 몇 차례쯤 만나게 되어 그 분의 배경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정원성 사장은 일제 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임시정부 자금조달 임무로 말레이의 싱가포르에 정착한 분의 아들로 출생하여 영국식 고등교육을 받고 싱가포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경험이 있던 분이었다. 해방 후 귀국한 정 씨가 그 능통한 영어 실력 때문에 미군정시절부터 미군 관계 납품이나 세탁 등 서비스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의 미8군의 한국 주둔 때문에 미군 상대 군납으로 시작해서 미군 시설 건축으로 변모된 경남기업이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나와 정 사장 댁의 인연은 내가 결혼한 1962년 6월을 전후로 끊어진다. 정 사장 사모님이 당시 서울에서 보기 드문 미제 고급차를 타고 우리의 결혼식에 왔던 것이 마지막 해후였다. 내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1964년에 미국에 온 다음에도 가끔 신문에서 경남기업의 활약상을 보곤 했었다. 국내 건설업계로 현대보다도 먼저 태국에 진출하여 ‘해외 건설 면허 제1호 업체’가 된 게 1965년경이었으니까 몇 년 후에 경남기업이 한국 재벌 랭킹에 있어 제 4위였었다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이완구 총리에게도 3,000만원을 제공했다는 성완종 씨의 자살 직전의 폭로 때문에 이 씨의 자리가 풍전등화일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전 현 비서실장들도 뇌물 수수자로 거명된 것과 비(非) 박계로 분류되는 홍준표 경남지사도 1억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 한국 정계에 미칠 폭발성은 정말로 핵폭발 급이라서 그 피해와 여파를 헤아리기 어렵다.
신문 보도를 여럿 읽다가 내가 알던 정원성 회장은 1975년에 회사를 정리한 것을 발견했다.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박정희 공화당 독재시절 정치헌금을 하지 않고는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풍토가 영국식 신사였던 정원성 사장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그후 전두환 씨 부탁으로 박근혜 씨에게 성북동의 큰 집을 지어 무료로 바쳤다는 재미동포의 소유로 있던 경남기업이 1987년에는 김우중 씨의 대우그룹으로 되었다가 문제의 성완종 씨 손에 들어간 게 2003년이었다.
초등학교 4년 중퇴라는 성 씨는 불철주야의 자기 노력만이 아니라 권력자들을 돈으로 구워 삶고 반대급부로 특혜를 받고 또 받아 조그만 건설회사로 출발하여 국제적인 대 건설회사까지 흡수했던 정경유착형 기업인이었던 것 같다. 어떤 신문 사설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는 2002년 지방 선거 때 출마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2005년에는 당시 노무현 정부 실세들이 대거 관련된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되어 두 차례 사법처리 됐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05년과 2007년에 특별 사면되는 전례 없는 특혜까지 받았다.” 서울에서는 밤잠을 설치는 정객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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