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 오면 나의 기억은 나의 학창시절, 꿈과 낭만이 흐르던 서울 문리대 구 동숭동 캠퍼스를 헤맨다.
1960년 4월 초순. 2학년 새 학기를 맞은 캠퍼스에 때아닌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우리들의 가슴에 일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마산에서 타전된 AP통신의 이 보도는 짤막했다 “낚시꾼은 굉장히 큰 놈이 물린 거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낚싯줄을 당겼다. 그러나 얼마 후 물 위에 떠오른 물체를 보고 그는 그만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이 굳어져 버렸다. 낚싯줄 끝에 매달려 올라온 물체는 다름 아닌 김주열의 시체였다.”
바로 3주전 3월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는 원천적 부정선거였다. 선거당일 전국 각지에서는 자유당의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항의가 빗발치 듯 일어났다. 마산의 민주시민들도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이 시위대열에서 실종된 마산상고 1년생 김주열의 참시(斬屍)가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 것이다. 이 짧은 비보가 민중들의 가슴속 깊이 농축된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울분의 화산을 폭발시켰다.
남해의 항구도시 마산에서 솟아오른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을 덮쳤다. 김주열 군의 희생이 점화한 한 점의 불씨는 요원(燎原)의 들불이 되어 소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번져나갔다. 이 불길은 4월 15일에는 호남의 고도(古都) 전주를 휩쓸었고, 이틀 후에는 서울을 덮쳤다. 4월18일에는 고대가 일어섰다. 고대생들은 안암동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여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해산 길은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선혈이 낭자했다.
드디어 4.19 혁명의 아침이 밝아 왔다. 이날은 화창한 봄날의 해맑은 표정과는 달리 처연한 분위기가 동숭동 문리대 교정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등사판으로 민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스크럼을 짜고 교정을 나섰다. 국회의사당과 중앙청 및 경무대 입구까지 진출한 이날의 시위에는 서울대를 비롯, 고대, 연대 등 서울의 거의 모든 대학이 참가했고, 대광중고를 비롯하여 어린 중고생을 포함하여 십만을 헤아리는 학생들이 참가했다. 오후에는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서울 일원은 혁명의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광주를 비롯,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민주주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이 민주시위를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군중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날의 발포로 1백15명이 숨지고 1천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휴교령이 내렸다. 그러나 드높게 치솟아 오른 혁명의 불길이 계엄령으로 잦아 들 수는 없었다. 죽음인들 우리의 분노를, 그리고 자유쟁취의 다짐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계엄령에도 시위는 계속되었고, 26일 대학교수들이 거리에 뛰쳐나오자 미국은 이 사악한 독재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승만은 하야(下野) 이 외의 다른 선택이 없었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은 파쇼전제주의, 민족분단주의, 사대매판주의 및 부정부패에 대한 조종(弔鐘)이자 민주주의, 민족자주 및 민족통일의지의 승전고(勝戰鼓)였다. 세계가 한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결의에, 그리고 그 결의를 실천하는 용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동학혁명, 3.1독립선언과 함께 민족사에 자랑스런 이정표를 세운 이 4월혁명은, 그러나 이듬해 5월16일 미명 박정희 특공대의 한강 도강(渡江)으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4.19정신은 그 후 30년에 걸친 군사정권과의 대결의 고비마다, 그리고 광주민주항쟁, 6월항쟁 등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에 동기를 부여했으며, 마침내 군사독재를 굴복시킨 원천적 동력이었다. 4.19혁명의 위대성은 우리 겨레가 스스로의 역량으로 민주주의의 지평을 열어제낀 데 있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자주의 선언이었다면, 4.19는 바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8.15 해방 후 남북단일정부를 세우려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민족세력의 좌절로 고착된 분단을 깨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민족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준 경종(警鐘)이었다. 광주 대학살 등 처절을 극한 매카시즘의 발호에도 조국의 민중이 통일 대장정(大長程)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4.19 정신이 한국 민중의 심장에 내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4월혁명의 봉화(烽火)는 우리 민족이 통일을 성취하고 정의와 자주에 입각한 참다운 해방을 실현하는 그 날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Editor-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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