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물살이 흐르는 깊은 계곡, 그 위에 걸려있는 외나무 다리, 산양 두 마리가 맞붙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절대 서로 양보가 없다. 자기가 먼저 건너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대개 이런 싸움은 누가 뜯어 말리기 전에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워낙 고집이 세서 한 마리가 계곡 밑으로 떨어지거나 둘 다 떨어져야 끝이 난다.
이쯤 얘기하면 지성적인 사람들이라면 무슨 얘기인지 벌써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 한반도 분단의 비극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한쪽이 자유억압과 가난으로 민중봉기가 일어나 망하든가 한쪽이 부패비리 민족의식 타락으로 수렁 속에 빠져 버리든가 해야 결말이 나올 것 같다는 자조적이며 자학적인 탄식도 심심치 않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통일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사사건건 싸우고 저주하고 아귀다툼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남북 양측의 역대 정권들이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각각 자신들의 또는 자기 정파들의 정권장악유지 또는 연장수단으로 이용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권력의 위기가 닥치면 의례히 내세우는 게 용공종북이요, 사상불순이요, 미제 간첩행위다. 역대 남북양측 권력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집권구실을 앞세우고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우선 아닌 차선으로 취급해 오고 있다. 남북양쪽 정권의 확고한 통일 철학이 결여된 것이 가장 큰 비극의 단초다.
두 번째는 남북이 통일을 이룩하려면 강대국들의 외세압력에서 벗어나 자주적 위치에 설 수 있는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한다. 지금 한반도는 정신없이 외세에 짓밟히고 있는 양상이다. 국제적 파워게임의 격랑 속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한반도 주요 현안이나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회의소집권이나 발언권이 전혀 없는 상태다. 살아남으려는 북한은 핵을 지녔다는 죄목으로 가혹한 금융제재와 국제교역 차단으로 빈곤경제가 가일층 심화되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화두가 흔히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현실적 도식일 뿐 통일 추진에 근본적 치유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핵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다르다. 중국은 북한의 핵이 일본 핵무장의 빌미가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래도 북한과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통한 한통속,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갖고 있다. 경제적 단물이 빠지면 남한으로부터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 기미가 보이자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라”고 무례하고 노골적인 공개적 협박을 가해왔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의 중국방문도 4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오는 9월 김정은 북한 위원장을 중국으로 초청해 놓은 상태다. 러시아도 오는 5월 세계2차대전 승전 기념식에 남북 지도자를 초청했고 일본다 납북문제를 구실로 북한과 제네바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는 등 한반도에 영향력을 가지려고 호시탐탐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우리의 통일을 도울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가 대 국가 관계는 개인 대 개인 인간관계가 아니다. 아무리 튼튼한 우방이라 할지라도 양국간의 이해득실은 언제나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주었지만 자신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우리는 함께 싸웠음은 물론 한반도를 전쟁터로 제공한 셈이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고 소중한 관계이지 우리만이 미국의 일방적인 신세만 진 것처럼 저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한미관계는 숙명적인 맹방관계다. 그럴수록 대등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갑”의 입장에 서면 거기서 반발이 생기고 사대주의적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방이었던 대만을 버렸고 지금은 일본의 극우정책을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다. 얼마전 미 주요언론은 미국과 북한의 비밀회담 진행설을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웬디 국무차관은 공식논평을 통해 “한국은 일본에 도전하지 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했다. 이런 엄청난 실언이 미 고위 관리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개 차관급 각료가 함부로 남의 나라의 외교정책을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그런데도 우리 정부 대변인은 물론 여야 어느 정당에서도 항의성명 한 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남북이 정치권력을 완전 배제한 공동과제 추진 협력체를 구성해 보자. 독도문제에 왜 북한은 일본에 아무런 항의가 없는가. 통일이 되면 독도도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다. 당연히 북한도 남한과 함께 일본에 공동 대응해야 마땅한 일이다. 앞으로 남북은 중국의 백두산 점유실태문제, 간도고토회복문제, 대마도 연고권문제, 그리고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문제 등등 타개해야 할 과제들을 찾아내 단일민족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고 과시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통일의 길,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번 여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북한이 대거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하는데 적극 환영해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80년대 일본 지바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우승한 바 있다. 남북이 통일만 된다면 어느 나라도 함부로 우리를 대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부터라도 치욕의 분단 상태를 벗어나 자존심의 활로를 여는데 남북이 인식을 같이 할 때다. 연락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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