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지난달 24일 LA 한인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38회 ‘한인 상공인의 밤’ 행사에서 자랑스러운 한인 스포츠인상을 수상했다. 박찬호 선수는 이날 수상소감에서 ‘열정’ ‘애국심’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야구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텍사스에서 마이너리거 생활을 할 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야구로 한국을 알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애국심’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언어와 문화 차이로 미국생활이 힘들었지만 야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부족했던 자신이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던 힘은 그 소중한 ‘인연’들 덕분이라며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영광을 돌린다고 밝혔다. 특히 박찬호의 오늘이 있기까지 성원해준 LA 한인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사실 최초의 한인 메이저리거의 탄생은 LA 한인사회가 열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가 LA 한인상공회의소에서 특별이사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한인사회의 경제력을 감안해 한국에서 야구선수를 영입하면 다저스의 마케팅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말리가 1994년 스티브 김 상의이사와 접촉해 한양대에 재학중이던 유망주 박찬호 선수를 스카웃하기에 이른다. 곧 이어 박찬호의 LA 다저스 영입 기자회견이 열렸고 스티브 김씨가 박찬호 선수의 에이전트를 맡았다. 지난 1991년 한국·미국·일본 고교야구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롱비치에서 경기를 했던 박찬호가 스티브 김 에이전트 집에 머물면서 다저스 구장을 방문해 유니폼을 사고 반드시 LA 다저스에서 선수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피력한 것이 현실로 되는 순간이었다.
1994년 LA 폭동과 노스리지 지진, 불경기 후유증으로 침체된 LA 한인사회에 박찬호의 다저스 영입은 한인들의 삶에도 큰 활력소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로 직행한 17번째 선수인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이면 LA 다저스테디엄은 태극 물결로 뒤덮이곤 했다. 1994년 4월3일자 LA 타임스는 “한인사회가 오랜 역경끝에 찬호 매니아(Chan Ho-Mania)에 환호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당시 기자는 KBS America의 전신인 KTE 방송기자로 일하며 박찬호의 활약상을 KBS방송을 통해 한국에 특집으로 내보냈으며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인 샌안토니오 미션스, 앨버쿠키 듀크스 등을 전전할 때도 30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로컬 방송에서 방영하는 등 박찬호 선수를 계속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996년 LA 다저스로 복귀해 본격적인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잡은 박찬호는 1997년 14승8패로 노모 히데오를 제치고 다저스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투수로 IMF로 힘겨워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찬호에게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1999년 애나하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상대투수와 몸싸움 끝에 이단 옆차기로 상대를 가격하는 사건으로 경기중 퇴장을 당하기도 했으며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5년 계약 6,500만달러의 조건으로 옮겼지만 잦은 부상으로 몸값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초창기에 급격하게 스타로 부상하면서 부와 명성을 쌓은 박찬호는 한때 교만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랜 메이저리거 생활에서 실패와 좌절의 시간을 인내로 견뎌내고 아시안 선수 최초로 124승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박찬호는 현재 재일동포 3세 요리연구가인 부인 박리혜씨와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있으며 제2의 고향인 LA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자서전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에서 박찬호는 “상처가 많은 과거였다면, 그 상처가 치료된 미래는 더욱 강할 것이다. 강해진다는 건, 또 다시 닥칠지 모르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앞으로 야구행정과 경영, 구단 운영 등을 공부하면서 한국과 미국 야구의 가교 역할을 하며 유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박찬호는 마운드에서보다 마운드에서 내려 온 지금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자신의 위업을 뛰어넘는 한인 메이저리거 선수의 배출을 위한 선배역할을 자처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히어로’ 박찬호의 LA 이모작 인생이 기대된다.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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