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바니타스’ 정물화를 찾아서 봅니다. 해골과 시계, 촛불과 타다남은 등잔, 읽다 만 책들과 골동품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참혹한 ‘허무’[虛無, vanitas]!결국(In the end), 적나라한 허무에 이르고야 마는 사람의 일생. 이뭣고! 허(虛)! 그렇게 짧은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Vanitas Still Life!촛대와 책들 사이에 가만히 놓인 해골! “전도서” 말씀을 빗겨가기가 어렵습니다.
인생무상! 인생의 허무함을 화들짝 전하는 ‘바니타스’ 정물화가 고요히 읊조리는 단어는 "Vanity!" 그리고, ‘Vanity’란 말에 즉각 떠오르는 말씀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배~너티 어브 배~너티즈; 얼~이즈 배~너티!]노랫말 음률로 도(道)를 전하는 전도서를 읊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1-4] “Generations come and generations go, but the earth remains forever.” 허(虛)!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영어 단어 ‘vanity’는 쉽고 어려운 말입니다. 다들 아는 쉬운 단어이지만 용례가 다양해서 종종 의미심장한 말로 나타나곤 합니다. 짐작하시듯, ‘vanity’의 어원은 ‘비었다’는 ‘vain’입니다. 텅 비어 공허하다는 게 본래 의미입니다. 그런데, ‘허무(虛無)’란 뜻 외에, 불필요한 사치를 뜻하는 ‘허영(虛榮)’이란 뉘앙스도 종종 가미되어 쓰입니다. 사실, 허무와 허영은 심각하게 다릅니다. 그럼에도, ‘vanity’는 그렇게 오묘한 2중성을 가진 단어입니다.
일례로, 잘 나가는 잡지들 가운데 "배너티 페어(Vanity Fair)"라는 게 있습니다. 사치와 허영을 부추기는 업소엔 반드시 비치되곤 하는 잡지인데, 굳이 우리말로 뜻풀이하자면, ‘허영 박람회’ 정도가 될까요?
만국 박람회를 ‘World’s Fair’라 하는 걸 보면 "Vanity Fair"란 조합어의 감(感)이 좀 더 가깝게 다가 오시리라. What is your vanity? 당신의 허영(虛榮)은? 당신 인생의 사치는 과연 무엇인가요? 흔히 ‘What’s your vice?"라는 짖궂은 질문에 버금가는 표현입니다.
당신의 악(惡)은? 당신의 은밀한 부덕(不德)은? 세상에 완벽한 도덕군자는 없지요. 누구든 ‘virtue’[덕]에 상충되는 ‘vice’를 한두 가지 지니고 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What is your vanity?" 그런 질문도 제법 고상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비교적 검소하게 산다고 믿는 저에게도 숨겨진 ‘vanity’가 여럿 있을 터입니다. 공명심도 허영이요, 지적 자만심도 ‘vanity’에 다름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고집도 ‘vanity’요, 검소하다고 믿는 그 생각도 속내의 은근한 ‘배~너티’에서 비롯됨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모든 게 ‘vanity’라는 겁니다. 지나친 겸손은 말할 것도 없고, 과공(過恭) 또한 비례(非禮)를 넘는 허영이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겁니다.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난 몇 주, 백운재(白雲齋) 이사하느라 부산했습니다. 짐이라곤 대부분 책들이지만, 이래저래 여기저기 오랜 시간 모아둔 책들을 옮기다 보니, ‘무소유’는 늘 공염불이어라! 이 많은 장서를 다 옮기고 나름대로 정리해 꽂고 나서, 인터넷으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큰 화면으로 물끄러미 ……
그리고 유심(有心)히 들여다 봅니다. 그런데 …… 누가 누구를 보고 있나? 내가 정물을 보나, 정물이 나를 보나? Who’s watching whom? 그렇게 물아일여(物我一如)에 잠시 머무는 동안, 전도서 말씀만큼 뇌리에 번쩍하는 문구가 스칩니다. 바로 금강경 사구게 하나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모든 형상은 텅 비어 허망하니,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즉시 여래를 보리라. 아뿔사!그렇지! 다만 무념일처(無念一處)에 ‘비어’ 계시는 하나님을 자주 말과 글에서 찾으려 하다니! 궁시렁대는 생각들을 모두 내려 놓으면 거기에 “텅~비어 계시는” 하나님을 왜 시끄럽게 찾는고?
‘Vanity’는 곧 공(空)이 아니던가?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게 공이요 공(空)또한 한 생각 아니던가! 그러니,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바로 그거 아니겠는가!그렇게 책더미에 묻혀 바니타스 정물화를 바라보며 무념무상 중 ……
따르릉! 어? 골프 초대 전화군요. 만사 제치고 부리나케 달려 나갑니다.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허(虛)는허(虛)! 그러나, 골프는 골프! 역시, ‘지금의 힘’[the Power of Now]은 물리치기 어려워라.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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