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이 최근 두 번에 걸쳐 은행과 크레딧카드 계좌를 해킹 당했다며 울상이다. 빠져나간 돈이야 돌려받았다지만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거기다 요즘 같이 온라인 페이먼트가 대중화된 시대에 전기, 개스에서 케이블, 셀폰까지 수많은 어카운트에 이를 신고하고 변경해야 했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아이디나 계좌로 버젓이 샤핑을 하고 아파트 렌트 계약까지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이런 신분도용 범죄는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며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기자도 여러번 신분도용을 당해 피해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몇 년 전 아파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크레딧 체크를 하게 됐는데 가는 곳마다 입주 거절을 당했다. 크레딧만큼은 누구보다 제대로 관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황당하기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군가 내 소셜넘버와 운전면허증을 도용해 아파트를 얻었는데 렌트를 몇 달치나 밀리면서 콜렉션 에이전시로 케이스가 넘어간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참 많은 고생을 했는데 특히 그 용의자가 한인이란 사실에 씁쓸함을 더했다.
2년 전에는 거래하는 주류 은행으로부터 텍스트 메시지를 받았다. ATM 카드로 사우스다코타주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개스를 주유한 내역이 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다. 물론 그런 적은 없다. 해킹한 범인이 1,000여마일 떨어진 곳에서 버젓이 내 카드를 쓴 것이다.
요즘의 신분도용 범죄는 개인 차원 뿐 아니라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에는 소매체인 ‘타겟’의 데이터베이스가 통째로 해킹되면서 무려 1억명의 신상정보가 노출돼 충격을 줬다. 이렇게 빠져나간 신상정보를 이용한 사기 카드 발급 피해가 잇따르며 그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우정국(USPS)까지 당했다. 해커의 공격을 받아 직원 80만명이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유출된 정보에는 직원들의 이름, 생년월일, 소셜 넘버, 주소, 근무연한, 비상연락처 등이 포함됐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얼마 전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소니픽처스 해킹 사태도 떠오른다.
발길 닿는 곳마다 ‘신분도용 지뢰밭’이다.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대규모 해킹 사태는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신분도용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우선 크레딧 모니터링 서비스 하나 정도는 가입하는 게 좋다. 기자도 신분도용 피해를 당한 이후 트랜스유니온, 에퀴팩스, 익스피리언 등 3대 크레딧기관 중 하나의 모니터링 서비스에 가입한 후 수시로 크레딧을 체크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서비스 이후 크레딧을 도용당한 적은 없다.
이런 서비스에 매달 지불하는 돈이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6개월에 한번 정도 크레딧 체크를 해봐야 한다. 모든 소비자들이 1년에 한번 무료로 크레딧리포트(annualcreditreport.com)를 받아볼 수도 있다. 특히 한인의 경우 영어 표기상 성과 이름이 비슷해 오류가 빈번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류를 발견했다면 즉각 정정신청을 하는 것도 잊지 말자.
신분도용이 걱정된다면 가급적 소셜네트웍서비스(SNS)도 멀리하는 게 낫다. SNS가 신분도용 범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SNS에서는 비교적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아이디 도용을 할 수 있다.
무심코 버리는 종이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범죄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개인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매년 한 가정에서 버려지는 종이는 대략 150파운드 내외라는데 이 종이에는 크레딧카드 및 은행 계좌번호, 이름, 주소 등 중요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주 간단한 체크 방법도 있다. 서치 엔진에서 자신을 검색 해보는 것이다. 이름과 함께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직장 등 관련 키워드를 넣고 얼마나 많은 자신의 정보가 돌아다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검색 후에는 해커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지 따져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보안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 정도의 예방법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 제대로 실천해도 범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아직 ‘운 좋게’ 신분도용 피해를 당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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