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음악의 출발은 ‘불새’의 출현과 함께 시작됐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세기의 낡아빠진… 낭만주의와 결별하고, 20세기를 알리는 새로운 음악은 없을까?
작곡가들의 그러한 창조적 목마름을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불새’와 함께 등장한 스트라빈스키(1882-1971)였다. 과도한 형식주의… 고전의 따분함을 축소하고, 표현의 자유로움… 자신만의 색채를 마음껏 담아낸 그의 음악이야말로 음악의 피카소…
20세기를 알리는 불협화음의 전주곡이었지만 그것은 또 멀고 먼 전위예술의 별세계… 일정한 텍스트를 벗어나, 개인에게 과도한 짐을 지워주게 된 것 또한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불새’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음악, 쇼킹하도록 신선하면서도, 고전의 요소도 함께 살아있는…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유명한 피날레보다는 불새의 신비를 내면적으로 표현한 전반부 부분이 훨씬 감성적인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외향적인 서구스타일보다는 어딘가 동양적인 정서를 함께 머금고 있다고나할까?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안으로서, 그의 스승 림스키콜사코프 등과 함께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표방한… 즉 중앙 아시아인의 피가 섞인, 동방예술의 서막을 알린 작곡가였다. 스트라빈스키 등의 탄생과 함께 음악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즉 북방의 강렬한 감성을 담은 러시아 쪽으로 급력히 기울기 시작하는데, 19세기에는 없었던 동양 음악가들의 활약을 알리는 그 출발점이었다고나할까?
한국의 안익태, 정명훈, 일본의 세이지 오자와 등은 20세기에 출현한, 동양출신의 세계적 지휘 거장들이었다.
특히 세이지 오자와는 미국 5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보스턴 심포니에서 무려 30년간 지휘봉을 휘둘렀던 전설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동)악단사상 최장기 상임 지휘자로서, (베를린 필의)카라얀을 빼고는 한 악단에서 그만한 장기집권은 거의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보수주의의 텃밭 보스턴에서 세이지 오자와는 장장 30년을 살아남았던 것은 물론 보스턴 심포니의 위상을 격상시킨 공로자로서, 1994년 보스턴 지역의 탱글우드 음악센터에서는 오자와의 이름을 딴 기념관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최근 무라까미 하루끼라는 소설가와 함께 나눈 대화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식도암 수술을 받은 오자와가 이제 나이 팔순을 넘기고 있다는 소식 등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는데, 안익태가 한때 일본인 이름으로 세계 지휘계를 누빈 바 있지만 세이지 오자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본최초의 세계적인 지휘자였다.
일본인과 클래식… 어딘가 어울려 보이는 한 쌍인 것도 같지만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데, 대 일본제국의 사무라이 정신의 자존심을 세워줄 인물이 결코 하나도 없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단연 세이지 오자와를 꼽을 수 일 것이다. 오자와는 1935년 만주 봉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까지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태생과는 별개로, 오자와는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 누가뭐래도 일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오자와는 또한 일본 최고의 교향악단 NHK(교향악단)에서 버림받고(혹은 그가 버렸든…) 미국에 귀화했듯, 누가뭐래도 미국인이며 세계인이기도 하다. 오자와의 지휘 모습을 볼 때 마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자유로운 복장 스타일이다. 특히 중국풍의 복장을 즐겨 입는다는 것인데, 어쩌면 일본인의 입장에선 반 민족주의자로 비쳐질 수 있겠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자와는 세계 속의 자유인… 그리고 범동양인으로서 활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지휘가 주는 감명은 어쩌면 실력에 앞선, 그의 초월적인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자와의 지휘는 풍부하며 인간적인데, 1953년 18세의 나이에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1960년 버크셔 콩쿠르, 쿠세비츠키 콩쿠르, 카라얀 콩쿠르 등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우승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천재였다.
카라얀, 번스타인의 뒤를 이은 진정한 거장으로도 평가받고 있는데, 유독 한국인들에게만은 (어쩌면)열외로 취급해 온 지휘자 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도 (예술에서 만큼은) 일본에 대한 앙금… 편견을 버리고, 한 예술가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나는 지금도 그가 지휘한 ‘불새’의 감동을 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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