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미국이나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미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대학 문턱을 밟아 보지도 못했거나 졸업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PC 혁명의 선구자이자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대학 중퇴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컴퓨터 업계의 3인자인 오러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페이스북으로 20대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 모두 대학 중퇴자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 19세기로 가 봐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번 것으로 돼 있는 존 록펠러와 ‘강철 왕’ 앤드루 카네기 모두 대학 근처에 가보지 못했다.
정치 쪽도 마찬가지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항상 1, 2위로 꼽히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험 링컨 둘 다 대학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다. 워싱턴의 보좌관이자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하버드를 나왔고 ‘독립선언서’를 쓰고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버지니아의 명문 윌리엄&메리 대를 나왔으며 연방 헌법을 기초하고 4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은 프린스턴(당시에는 뉴저지 대)을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워싱턴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도 비슷하다. 20세기 후반 미 정치 지형을 가장 크게 바꾼 로널드 레이건은 일리노이의 소도시 유레카 대학을 나왔다. 그 밑에서 부통령을 한 아버지 부시는 예일을, 그 다음에 대통령을 한 빌 클린턴도 예일을 나왔지만 업적에서 레이건에 많이 못 미친다. 그 다음에 대통령을 한 아들 부시도 예일을 나왔지만 사상 최악의 대통령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버드 출신으로 현재 대통령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의 레이건’을 꿈꿨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민주당의 오바마’로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내년도 대선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후보 중 학력이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물은 누굴까. 위스컨신 주지사로 있는 스캇 워커다. 밀워키에 있는 마켓대 중퇴가 전부다. 그는 그러나 여러 후보 중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 주지사에 당선된 후 공무원 노조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이들의 연금 부담액을 늘리고 단체교섭권을 박탈해 버렸다.
이로 인해 전국 공무원 노조의 공적 1호가 된 그는 2012년에는 미 역사상 3번째로 소환 투표 대상에 오른 주지사가 됐다. 그는 이 선거에서 전국 공무원 노조의 집중포화를 받고도 살아남으며 소환 투표에서 생환한 미 역사상 첫 주지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워커의 개혁안이 시행되면서 위스컨신 주 재정은 수십억 달러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비즈니스 환경은 개선됐으며 노조원 강제 회비 징수가 폐지되면서 노조 가입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작년 11월 있었던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무원 노조는 그의 낙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공화당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의 하나가 과도한 공무원 연금이다. 민주당의 주요 돈줄이자 표밭인 공무원 노조는 선거 때마다 이들에게 돈과 표를 모아주고 민주당 정치인들은 해마다 이들의 연금액을 늘려주는 바람에 주정부는 장차 감당하지 못할 재정 부담을 지고 있다. 가주만 해도 앞으로 이들에게 물어줘야 할 돈이 3,200억 달러에 달한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젭 부시와 1, 2위를 다투고 있는 워커는 여러모로 부시와 대조적이다. 젭이 미 최고 정치 명문가 출신인 것과는 달리 워커는 자신의 업적 이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고 젭이 온건한 이미지로 폭넓은 지지층이 있는 대신 보수파로부터 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과 달리 그는 열렬한 보수파 지지층이 있는 반면 중도파에게는 별 인기가 없다.
그가 과연 대통령을 할 만한 그릇인 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다.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들은 지지자나 반대자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묵묵히 시대가 요구하는 과업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워커 같은 인물이 정치판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미국에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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