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의 가르침이다. 약육강식으로 시작된 세계 인류사에 파란을 예고한 지적이었다. 죽고 죽이고 강탈하고 빼앗김의 연속이 세계사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 원한을 가슴에 담은 후손들의 번성은 살육과 복수극으로 창궐하고 있다.
한반도의 역사도 특히 지난 1950년 6.25전쟁 이후 점점 더 깊은 원수관계가 누적 돼 오고 있다. 예수가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가르침은 오늘의 한반도 비극상황을 예측한 족집게 충고인 것만 같다. 6.25 전란 통에만도 남북이 죽고죽인 숫자는 부상자를 합쳐 물경 600만을 넘는다. 6.25 전쟁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육,납치, 행방불명, 저격, 암살, 기습등등 끊임없는 비극의 연속이다. 이렇게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 사이에는 원수관계만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6.25 전쟁때 국군의 총에 혹은 인민군의 총에 죽은자의 후손들이 제각각 남북에서 복수의 한을 품고 있다. 오늘을 사는 이 후손들의 또 후손들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수극의 번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그 악감정의 분위기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툭하면 전쟁 불사론이 나오고 상대섬멸의 끔찍스럽고 치졸한 언사들이 마구 교환되고 있다. 대표적인 중앙방송이 상대방 대통령을 서슴지 않고 욕설로 비방하기 일쑤이고 섬뜩한 살부지수의 한을 그대로 내뱉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상대방의 가난과 폭정을 마구 공격해대며 심지어는 지도자 부인을 놓고 마냥 조롱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 국가임을 자부하는 자존심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 치졸의 원수극의 끝이 어디인가. 원수개념의 DNA를 타고나 자라고 있는 우리의 후손 어린이들에게 숫제 원수의 노래부터 가르친다.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남측)”, “반동테러의 쓰러진 동무 원쑤를 찾아서, 떨리는 총칼 조국의 자유를 팔려는 원쑤..(북측)” 우리 후손들에게 이렇게 처참하고 잔인한 원수타령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 남북한의 정서이다. 이러한 슬픈 정서는 북측에서 민족 전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핵무기를 제조하여 남한 쪽에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남한에선 최신 살상무기와 외국군대, 전함까지 동원하고 바로 북한의 코앞에까지 데려와 키 리졸브 겁주기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러나 언제 불의의 대형 참극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게 현실 아닌가. 이 모든 오늘의 현황은 누적된 원수 감정이 빚어낸 것이다. 남북이 한핏줄 한민족이라는 기초적인 애정관계는 까맣게 잊은채 자기 체제 자기 권력 유지에만 몰두해 왔기 때문이다. 전쟁이 별것인가. 양측의 어느 쪽에서라도 열혈 병사들이 순간적 정의감 충동으로 상대편 쪽에 소총이나 대포를 쏘아대고 다른 한쪽에서 맞받아쳐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누구도 이를 제재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면 그게 바로 전쟁 아닌가. 우리 남북상황은 좀체로 전쟁이 안 일어날 것 같지만 동시에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마땅히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갈라져 살아가는 이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교훈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추호도 어느 특정 종교 선택을 권유하려는 게 아니다. 원수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자비심을 강조한 불교에도 있고 인과 덕을 강조한 공자말씀도 마찬가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은 보편적 진리를 강조하는 전범인 만큼 무신론자들이라해서 혐오감을 가질 까닭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떤 경우에나 위대한 화합과 평화를 생산한다. 그리고 가장 힘들면서도 인간 누구의 마음속에나 넉넉히 저장되어있는 자산이다. 남북의 원수 감정도 진정한 동포애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은 많은 선언문이나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도대체 통일 진전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 않나. 7.4남북공동성명 한 장만 실천했어도 우리 통일은 벌써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7.4 공동성명의 ‘제도와 이념을 초월하여...’ 라는 이 첫줄도 실행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남북간에 진정한 민족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의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 토론을 해도 피차간 악감정을 가진 회합은 절대 진정한 타협을 이뤄낼 수 없는게 분명한 이치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갖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자기 마음만 비운다면 의외로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석가모니는 즉심시불을 설파했다. 마음속에 불심(평화)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예수는 너희중에 하늘나라가 있느니라고 했다. 서로 저주하고 증오하면 그곳이 지옥이고 서로 잘 되기를 빌고 사랑하면 그곳이 천국이라는 얘기다. 언제 남북이 그렇게 허심탄회한 자세로 마주앉아 순수한 대화를 가져 본 적이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일운동의 최고표상은 김구 선생이다. 그 모진 빗발치는 모략과 비방에 개의치 않고 목숨걸고 삼팔선을 넘나들었다. 원수를 뛰어넘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 때문이었다.
‘함석헌의 씨알정신’도 원래부터 우리가 한 핏줄이니 모든 원한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남북한 온 국민의 숙원인 통일의 키워드는 단연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믿는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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