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처음으로 여행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전자제품을 생산하여 구미 각국에 수출하는 국제기업에 취직하여 도꾜 인근의 조후 시에 있는 일본지사에서 1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면서였다. 그곳에 근무하는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은 편이었으며, 잘 웃지도 않았다. 한국의 직장 분위기와는 달리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깍듯하고 친절했지만 생활은 철저하게 개인위주였다.
회사가 마련해준 나의 숙소는 10평 남짓한 아파트였으며, 가족이 있는 직원들도 모두 비좁은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일상생활이 바뀌며 식사 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만났다. 짜고 매운 음식에 익숙했던 나의 미각은 느끼한 라면을 먹을 때는 김치 생각이 절로 났다. 회사 근처의 포장마차에 가도 물가는 턱없이 비싸, 사케 한잔을 사면 안주인 다꾸앙(단무지)도 따로 사먹어야 했다.
일본 사람 들의 사는 모습을 보기위해 밥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의 인상이 깊이 남아있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서 먹는다. 식당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밥 한 공기, 생선 한 토막, 된장국, 밑반찬 하나로 조용히 밥을 먹고 나간다. 쓸쓸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보였다.
어쩌다 직원과 함께 카페에 가서 음주를 하는 경우에도 한국처럼 왁자지껄하거나 음주가무도 없이 맥주나 사케를 말없이 조용히 먹고 각자 자기 먹은 것만 지불하고 일어선다. 한마디로 일본 사람들은 허세가 없고, 허풍이 전혀 없었다. 마치 여왕개미를 따라 다니면서 열심히 일만하는 개미들과 같다고나 할까.
몇 달이 지나면서 일본인들의 좋은 점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택시 운전사들의 친절함이다. 한 밤 도심지의 정류장에서 줄을 서 있으면, 차례 대로 태워주고, 바가지도 씌우지 않고, 승차거부도 물론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보면, 택시 운전사가 만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거나 순찰하던 경찰이 취객들을 경찰차로 그들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기사도 흔히 본다. 그리고 수많은 차들이 거리를 누비지만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어본 적이 극히 드물다.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고 하겠다.
일본지사에서의 파견근무가 끝나갈 무렵, 함께 근무하던 히데꼬 양이 나에게 1월 1일 정초 아침 왕궁 앞에서 열리는 일본 국왕의 알현 장면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수만 명이 넘을 듯 한 시민들이 왕궁 앞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양손에는 일장기가 두 개씩 들려있었다.
이윽고 국왕 내외와 황태자 내외가 왕궁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엄청나게 큰 관중의 함성이 마치 나의 귀청을 찢어 놓을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천황폐하 만세(덴노헤이카 반자이)” 그칠 줄 모르는 열광적인 함성소리에 나는 기가 질려 넋을 놓고 그들이 흔드는 붉은 일장기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열광적인 함성은 국왕이 왕궁 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 옆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고 있던 히데꼬 양이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나의 손을 이끌고 군중 속을 헤집고 나와 택시 정류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조용하고 친절한 일본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왕을 향해 일본인들이 미친 듯이 뜨겁게 열광하는 것을 보고 일본인들은 일왕을 정점으로 일본이라는 국가를 사랑하는 일본인의 혼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눈이라는 창문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오류투성이이며 어리석은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장점이 많은 국민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은(恩)과 원(怨)이 분명한 국민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행한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아베 총리가 졸렬하게 부인하며 국민들을 그의 제국주의 부활에 동참하도록 국민들을 충동질 하는 옹졸한 행위나, 집권 이래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사죄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한국 정부의 무능함을 보면서, 선량한 양국 국민들의 선린우호 관계만 무너뜨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 일 양국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상호 대치관계를 청산하고, 가능한 빨리 양국 국민이 친구지기로 돌아가 다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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