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원합니까” 51%가 “힐러리 클린턴”을 꼽았다. “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기 원합니까” 45%가 “미정”이라고 응답했다. 지난주 USA투데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응답자들이 각각 선택한 결과다.
이처럼 무주공산인 공화당 대권지형은, 선두주자가 확실해 아직 동면 중인 민주당과는 달리 수많은 잠룡들로 곳곳에서 요동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공화당 대선 캠페인이 비록 ‘비공식 개막’이긴 하지만 화려한 팡파르를 울렸다.
도널드 트럼프와 새라 페일린의 튀는 발언이 서커스를 연상케 한 아이오와 극우보수 행사에는 10명 가까운 주자들이 북적거렸고, 보수 부자들의 팜스프링스 연례 세미나엔 ‘초대받은’ 4명의 주자만 참석할 수 있었으며, 현재 선두로 꼽히는 미트 롬니와 젭 부시는 다른 모임은 불참한 채 둘이서만 유타 주에서 따로 만나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비공식 캠페인의 타겟은? 유권자(voter)보다 기부자(donor)라고 USA투데이는 꼬집는다. ‘표’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롬니가 3번째 대권도전을 고려한다는 뉴스도 그가 뉴욕에서 백만장자 기부자들을 만났다는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부시 역시 모금 위한 정치활동위원회(PAC) 발족으로 자신의 결심을 알린 후 뉴저지와 워싱턴에서 큰손들과 회동하고 있으며 아이오와와 팜스프링스에서도 예비주자들은 ‘모금’ 가능성에 안테나를 곤두세웠다.
미 보수진영의 가장 큰손으로 꼽히는 찰스 코크와 데이빗 코크 형제의 26일 발표는 2016년 대선의 ‘돈 폭탄 투하’ 통보라 할만하다. 무려 8억8,900만 달러를 공화당 지원에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 공화당의 백악관 입성을 위해서다. 극우보수의 자유시장 신봉자인 이들 형제는 “몸집과 간섭을 늘려가며 개인의 권리를 훼손시키는 큰 정부를 저지하는 사명을 재정적 지원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텍사스의 석유재벌인 코크형제의 자산은 합하면 830억 달러로 세계 1위 부자인 빌 게이츠 보다 많다. 이들과 300명의 부자들이 동참하여 모금될 9억 달러는 데이터 분석에서 풀뿌리 활동, TV광고에 이르기까지 17개의 선거관련 조직으로 구성된 코크 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체계적으로 집행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전국위가 쓴 선거 경비는 6억 달러였다. 9억 달러는 그냥 뿌리는 돈이 아니다. 코크 네트워크가 전국 정당과 맞먹는 규모의 돈과 조직으로 직접 선거전에 뛰어든다는 의미다. 당국에 신고할 필요 없어 출처가 공개되지 않는 ‘다크 머니’가 지난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그 효과를 입증한 후 이제 본격 집행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선거에도 약 3억 달러를 지원한 코크형제, 2012년에 1억 달러 가까이 풀었던 카지노 거부 셸던 애덜슨을 비롯해 선거판의 큰손 중엔 감세와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공화당 보수인사가 많지만 민주당이라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진보성향 한 억만장자는 기후변화 대책 추진에 수천만 달러를 지원했고 힐러리 지지자들도 앞으로 몇 달 3억 달러 모금을 벼르고 있다.
정치와 돈의 밀착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도 큰손 기부자들은 정치에 깊숙이 발 담가 왔다. 과도한 기부와 지나친 영향력 행사가 부패를 부르면서 대책이 강구되었고 부패를 막기 위한 규제가 입법화되면서 공공선거자금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정치로 흘러드는 막강한 돈의 위력에 힘겹게 맞서오던 규제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연방대법원의 잇단 규제 무효화 판결이었다.
지난주로 5주년을 맞은 ‘시민연합’ 판결로 기업과 노조의 무제한 기부를 허용하며 다크 머니의 산실인 정치자금 모금단체 ‘수퍼팩’을 탄생시켰던 대법원은 지난해 맥커천 판결로 큰손들에게 사실상 무제한 기부의 길을 열어주었다. 지난해 선거에서 100명 큰손들의 기부총액은 200달러 이하 소액기부자 475만명의 총액보다 많았다.
시민연합 판결에 대해 진보 대법관들은 현 연방대법원의 “최악의 판결”이라고 개탄했고 판결 이후 수퍼팩이 10억 달러 넘게 쏟아 부은 돈 선거의 영향을 분석한 대학교수는 연방대법원의 “10억 달러짜리 실수”라고 비판했다.
보통 사람들에겐 감 잡기조차 힘든 이 막대한 기부는 돈으로 후보를 사는 노골적인 금권정치를 초래한다. 돈 많은 큰손들이 반대하는 민생이슈가 정치가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면서 주에서 연방까지 정계에서 서민의 보이스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개혁은 지금도 시도된다. 기부자의 신분을 공개하는 투명한 선거자금법과 낙후된 공공선거기금제의 현대화 등 계속 제출되는 개혁안의 입법화로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의회라야 가능하다. “부자에 의해, 부자를 위해” 당선된 의원들이 장악한 의회에선 기대하기 힘들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후안무치 금권선거에 유권자들의 분노가 폭발한다면 ‘소수의 돈’보다 ‘다수의 표’가 승패를 결정짓는 선거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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