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공화당 의회와 타협해야 하는 민주당 대통령의 집권 말기는 전형적인 레임덕 시기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처지가 그랬다. 그러나 20일 밤 국정연설을 행하는 오바마에게선 소심한 레임덕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임 6년 매해 국정연설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였다. 야심찬 어젠다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때론 전투적이었고 때론 공화당을 찔러보는 여유마저 과시했다. 경제성장의 성과를 언급할 때,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민주당 의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여러분, 이거 좋은 뉴스입니다”라고 외쳐 폭소를 이끌어냈는가 하면 “내겐 더 이상의 선거가 없다”는 그의 말에 공화당 객석에서 야유조의 박수가 터져 나오자 씩 웃더니 “그건 내가 두 번 다 승리했기 때문이지요”라고 받아치며 윙크를 날리기도 했다.
“레임덕은 없다”는 듯한 그의 과감한 행보는 이미 지난 연말부터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비판을 감수하며 이민과 기후변화, 쿠바국교정상화 등 오래 끌어온 난제에 단호한 행정명령 발동으로 해결의 물꼬를 텄고, 새해 들어서도 사이버안보에서 무료 커뮤니티 칼리지에 이르기까지 정책 청사진을 끊임없이 소개, 관심을 집중시키며 모멘텀을 만들어냈다.
중간선거 참패 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보수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낙선우려에서도 벗어난 상황에서 자유로워진 오바마가 남은 임기엔 자신의 소신대로 강력하게 밀고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오바마 자신감의 가장 큰 원동력은 확실해 보이는 경제성장과 급상승을 기록한 여론의 지지율이다.
금년 국정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오늘밤, 우리는 페이지를 넘겼다”라고 정치분석가 에즈라 클라인은 꼽는다. 위기 종료에 대한 선언이다. 오바마 집권은 올해로 7년째에 접어들었으나 위기가 아닌 첫 번째 해라 할 수 있다. 대형은행 구제대책, 무너지는 경기 부양책, 실업대책, 적자위기 해소대책…그동안 매해 국정연설은 그때마다의 각종 위기대응책이 중심 테마였다.
첫 국정연설에서 9.8%였던 실업률은 현재 5.6%로 하락했고 지난해 3/4분기 경제는 5%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개솔린 값이 떨어지면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나아졌다. 끝없이 추락했던 국정 지지율 역시 18개월 만에 50%로 치고 올랐다.
그 덕택에 금년은 달랐다. “페이지를 넘겼다”는 선언은 웅변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클라인은 강조한다. 새로운 정책으로 이어진다. 여러 어젠다가 제시된 이번 연설의 주제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중산층 경제’다.
의적 ‘로빈 후드’ 스타일이라고 언론들이 표현하는 ‘부유층 증세와 중산층 감세’가 그 뼈대다. 온 국민이 위기를 극복하고 얻어낸 경제회복의 과실을 부자들만이 아니라 서민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다.
차일드케어와 교육, 주택과 헬스케어, 은퇴대비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의 필수적 일상분야에서 세금공제 혜택을 확대하고 신설하는 정책이다. 적자를 늘리는 예산지출이 아니다. 부유층 증세로 그 재원을 충당한다. 부자이니 무조건 세금을 더 내라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부를 차지하는 부자들에게 공정치 못한 혜택을 주어온 세법의 구멍을 막아 누구에게나 공정한 세법으로 개혁하자는 의도다.
이 플랜은 물론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국정연설 전부터 공화당이 단칼에 거부했으니 입법화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안과 공화당의 반응은 ‘부의 편중과 중산층의 좌절’에 대한 전면논쟁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중간 가정소득은 25년 전에서 별로 오르지 않은 연 5만1,939 달러에 머물러 있다.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무너지는 중산층 경제”는 엘리자베스 워런을 기수로 하는 민주당 리버럴만의 이슈가 아니다. 젭 부시와 미트 롬니 등 2016년 공화당의 대선 예비주자들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소득의 불평등이 미국의 중대한 당면문제라는 사실엔 ‘초당적으로’ 합의가 된 셈이다. 대책이 다를 뿐이다.
민주당의 해결책은 이번 오바마의 국정연설을 통해 공개되었다. ‘계급투쟁’이라고 일축하며 절대반대를 표명한 공화당이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국정연설에서 오바마는 미 국민을 향해 선택을 촉구했다. “소수만이 특별하게 잘 사는 경제를 용납할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소득증대와 기회를 부여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인가?”
대부분의 여러분에게도, 나에게도 이 선택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레임덕 같지 않은 레임덕 대통령이 던져준 숙제 - “중산층을 돕기 위해 오바마와 손잡아 가며 부유층에 등 돌려야 하나”가 공화당 의회에게는 그리 간단치 않다. 1%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님을 정책으로 증명해야할 부담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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