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아내가 식탁에서 말했다. “새벽 찬송 중에 갈매기 만한 큰 새 한 마리가 난데없이 창앞에 와서 화답하듯 춤을 추었어요. 기도 중에도 날개를 퍼득이며 오랫동안 머물렀어요.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40년을 함께 살며 까칠한 내 등살에 시달리고, 이민 고생을 할만큼 했는데도 아내의 영성(靈性)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나이 들수록 비판적이고 심사가 좁아져가는 나보다 아내가 사는 세상은 훨씬 밝고 넉넉하다. 새해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아내의 말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문득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란 싯구가 생각났다. “현재를 살아라”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싯구.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말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필요한 걸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런데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때문에 미래와 과거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불행하다.”
나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축에 속한다. 대소사를 치를 때마다 아내는 잘 될거야 괜챦아하며 독려하지만 나는 일단 일이 꼬일 가능성을 꼽으며 어깃장을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나중 돌아보면 결국 아내 말이 맞았는데 내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는다. 6.25때 판사셨던 아버지가 돌연히 납북당하시고 홀어머니밑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매일 일상이 불안했던 탓도 있으리라.
걱정이 많은 게 어머니와 내가 닮았다. 그러나 이순의 나이에도 소아병을 벗지못한다면 평생의 교육과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근에 짤막한 우화를 보면서 내심 뜨끔했다. “어느 아버지가 동전 닷냥을 주면서 방을 꽉 채우라고 했다. 첫째는 투덜거리며 건초더미를 사다가 방을 채웠고, 둘째는 솜을 부풀려 밀어넣었다.
셋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녁 한끼를 대접하고 남은 돈으로 초 한자루를 사다가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세상사람들은 이웃을 도우며 세상을 밝히는 셋째의 고귀한 삶을 살고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첫째와 둘째의 삶을 답습한다. 왜 그럴까? 바로 내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익이 박한 현재가 마뜩치 않으니 최선을 다하지 않고 건초더미 밀어넣듯 눈가림으로 살아온 첫째나 둘째가 내 모습이다. 아버지의 의중을 읽지 못한 탓이요, 내 욕심만 좇은 탓이다. 나름대로 애를 썼음에도 건초더미와 솜으로 채운 인생이 되고 말았다.
“카르페 디엠”은 남과 자신의 행복을 함께 배려하는 사람들. 자신을 희생하는 빛처럼 세상을 채워가는 사람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일 것이다. 이들에게 현재는 짐이 아니고 복이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에겐 현재가 짐일 뿐이다.
빨리 고달픈 오늘의 짐을 벗어버리고 내일 올 복을 맞이하곺은 착각속에 사는 것이다.
한 개그맨이 TV에서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는 강연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생각하면 가난도 짐이고, 부요도 짐입니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입니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일 중에 짐이 아닌게 없습니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집시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지는 게 현명합니다.”
오늘의 짐을 벗으려고만 하지말고 기꺼히 지고 살면 복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한다. 짐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복이 됨을 아는 것이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면 짐이 아니다, 짐은 무겁다. 그래서 짐은 등에 지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내등의 짐”이란 시에서 “내 등의 짐이 없었으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보니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늘의 짐이 복이란 말이다. 등짐을 진 개그맨이 다시 말했다. “우리 아예 짐을 져 봅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허리가 굽어집니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합니다. 집을 지고서는 기고만장 날뛸 수가 없습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자만이 짐을 복으로 바꾼다. 카르페 디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