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주전 워싱턴과 하바나에서 동시간대에 발표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합의는 필자의 고학시절을 회상시켰다. 동아일보에서 제1기 견습기자를 공채했던 1959년 1월 달에 나는 당시에는 종합대학도 아니었던 외국어대학의 2학년을 마칠 때였다.
‘대학졸업자나 동등의 실력을 가진 자‘라고 자격요건이 나왔기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시험을 치던 날 새벽부터 배가 몹시아픈 증세가 있었다. 이침일찍 셋방살던 이웃의 병원에 가서 진통제 주사 하나 맞고 간신히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가정환경이었다. 넷인지 다섯 과목의 시험을 마치자마자 김성진 외과로 갔더나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일주일 입원하고 나와보니 면접시험에 오라는 발표를 볼 수 있었다. 최종합격자들이 12명이었던바 반은 서울대 출신이고 3명은 연세대, 1명은 숙대, 1명은 외대 출신 그리고 재학생이던 나였으니까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동아일보와 보성전문(고려대)의 역사로 보아 그 시험이 얼마나 공정한 것이었던 지를 짐작할 수 있다.
1년이 좀 넘었던 각 부서의 견습 후 내가 정식 기자로 발령 난 것은 외신부였는데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정치나 경제 현안에 대해 동기생들보다 훨씬 자격미달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영어성적으로는 비등했을 터이니까. 그런데 3학년 1학기 등록금을 맹장수술에 써버렸기에 한학기는 자동휴학이 됐다가 다시 복교를 했다지만 견습기자/기자 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제대로 출석할 수 없었음은 당연지사였다. 학기말 시험때만 간신히 시간을 냈으니까 성적이 꽤나 나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어과 졸업생들에게는 12학점인지 영어 졸업논문이 요구됐었다. 그때 내가 쓴 논문이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에 대한 것이었다. 외신부에는 타임인 뉴욕타임스만이 아니라 뉴 리퍼블릭이라는 정치논설잡지가 오곤 했었는데 후자에 길다란 기사가 실린 것을 기억한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쓴 논문이 A를 받게 돼 평균성적이 간신히 B는 됐기 때문에 1964년 풀브라이트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돼 스탠포드 대학교를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와 체게바라가 주동이 된 7월26일 항쟁은 2년 게릴라 투쟁 끝에 당시 독재자 바티스타를 권좌에서 몰아낸 것이 1959년 1월1일이었다. 바티스타는 군부출신으로 미소 냉전 초기에 반공이면 무조건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던 전형적인 독재자였다. 그에 더해 그는 사탕수수밭 대지주들 및 미국 대회사들과 야합해서 친미, 친자본, 친기업 정책을 썼기에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활은 점점 피폐됐었다. 또 쿠바의 마약, 도박, 매춘을 독점하고 있던 미국의 마피아와도 한통속이었으니까 부정부패는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 진보세력의 일부는 카스트로의 혁명을 민중혁명으로 환영하는 기색마저 보였었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소련의 후루시초프와 점점 가까워지는 기색을 보이자 처음에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때 CIA를 시켜 공산화돼가는 쿠바를 떠난 피난민들을 훈련시켜 카스트로를 전복시킨다는 계획을 세운다. 케네디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그 계획이 추진돼 ‘돼지만(Bay of Pig)에 CIA 지휘 아래의 반카스트로 피난민 부대를 잠입시켰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만하면 쿠바인들이 동조할 것이라는 예측이 어긋나 실패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양측의 외교가 단절돼버렸다. 서로가 얼마나 앙숙이 됐던지 쿠바는 소련의 핵무기 미사일기지를 받아들였다가 핵전쟁의 위기를 겪은 끝에 소련이 꼬리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가하면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 처음에는 쿠바가 그 배후에 있다는 설까지 있었다. 그후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공산혁명을 수출하려는 노력으로 미국과의 원수관계가 지속돼왔다. 또 쿠바는 비행기 납치의 원조가 되다시피 했다. 미국 범죄자들이 당시에는 여권과 비행기표만 있으면 검색이 하나도 없이 비행기에 타고서는 쿠바로 기수를 돌리게 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했었다.
50년 이상 쿠바가 바뀌기만 기다려왔던 정책이 불합리 한 것은 오바마의 지적대로 중국과 베트남과의 미국 수교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이애미에서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아직도 많은 정치범들이 옥고를 치루고 있는 등 인권부재의 상황을 그대로 두고 수교하는 것은 경제적 실리를 앞세운 조급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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