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다 지나간다. 지난 일 년간 무엇을 어떻게 했나 되짚어 본다. 그런데 여지없이 같은 결론이다. 올 해도 그냥 정신없이 살았다는거다. 일년 동안 나 자신을 위해 휴가를 낸 것이 딱 하루 반이었으니 말이다. 그 중 하루는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날 사무실 문을 닫았을 때였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도 큰 탈 없이 지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손님들의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는 변호사 사무실도 같이 어려울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곳에 연체하지 않고 일 년을 지낸 것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내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독감으로 인해 며칠 침대에 누워 있기도 했지만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담당 의사로부터 음식 조심하고 운동해 체중을 조절하라는 잔소리를 듣지만 말이다.
평소 멀리 떨어져 사는 애들을 연말이나 되어서지만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또한 나름대로 삶의 희망이 된다. 추수감사절 휴가 기간 동안 집에 오지 않고 각자의 여자친구에게 간다고 했을 때도 크게 섭섭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원죄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과거에 부모님께서 섭섭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했기에 내가 그런 일로 애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는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또한 이제 그 애들도 자신들의 갈 길을 가도록 그냥 놔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쩌면 연말에도 집에 못 오거나 그보다 더 실망스럽게 생각될 수 있는 일도 있을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애들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의미있는 고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무엇을 하든지 열정을 갖고 할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길을 찾는 노력을 보이는 모습에 그동안 잘 커 주었구나 하는 고마움이 찾아 들었다. 돈 버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음에 감사한다. 부디 앞으로도 초지일관 그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인 내가 감사하는 것은 나에게 올 해 한 해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주위와 어우러져 사랑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과 결점, 풍성함과 결핍함, 이 모든 것을 적절하게 주관하시는 분이 사랑으로 나를 보살핀다는 것이다. 힘겨울 때는 주위 이웃들을 통해 밀어주시며,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 적당히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브레이크도 걸어 주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날을 우리가 어제 기념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에게는 그런 의미가 담기지 않았겠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귀한 성일이다.
아주 오래 전에 크게 몸이 아팠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 두 애들이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오래동안 건강을 과신하다가 병을 키웠다. 결국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담당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수술을 앞에 놓고서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수술 후 세포의 전이(轉移) 여부에 따라 후속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상황에서 어린 애들이 눈에 걸렸다. 기도했다. 10년 정도만 생을 더 지켜달라고. 둘째 애가 적어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는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우려했던 세포전이가 없어 일정기간의 간단한 화학치료로 병의 재발 없이 오늘까지 지내고 있다. 물론 기도했던 10년이 지나 간지도 몇 년이 되었다. 그러니 나의 기도는 이루어진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삶은 내가 원했던 것 이상의 보너스인 셈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더욱 새삼스럽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사람 욕심이다. 이제는 그 10년으론 절대 부족하다고 기를 쓰고 주장한다. 애들 결혼하는 것도 보아야 하고 이 다음에 손주들과도 같이 놀아 주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지난 일 년 동안 부족하지만 본 칼럼을 읽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한다. 새해에도 계속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해에는 경기가 확 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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