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시(詩)였더라?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자선냄비 곁에서 종을 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참 이상도 하지?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왜 하나같이 환하고 행복한 표정일까?
남루한 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1달러 짜리 두어 장을 자선냄비에 집어 넣으면서 “That’s all I have!" 하고 씩 웃는다. 그리고 저만치 앉아서 초콜릿 같은 것을 하나 꺼내 먹는데 아마 그것으로 점심을 때우는 듯 싶다. 내가 보기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 같은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은 꼭 자기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떤 점잖게 생긴 아주머니가 지갑에서 있는 돈을 다 꺼내어 냄비에 넣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0여 년 전 산호세의 어느 전자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을 하고, 돈도 다 떨어지고 두 부부가 오갈 데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구세군 구호소에서 두 달간 먹고 잘 수가 있어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다. 구호소에 있는 동안 다시 직장을 잡았고, 지금은 독립해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이 새 직장을 얻어서 적응하는데 빨라야 두달이 걸린다고 한다. 남편의 손찌검을 피해 나온 젊은 여인은 한 주 정도만 보호해 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갈 곳을 찾아간다고 한다. 만일 젊은 여자가 길에서 몇일 씩 노숙하게 된다면 이 험한 세상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 자기의 재산 5천만 달러를 페타루마(Petaluma)시에 기증하여 구세군의 구호사역을 돕도록 한 해리스 미쳄(Harris Mitchum)이라는 Cable TV 회사 사주(社主)를 필자는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은 미국이 한 참 경제공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때, 열 네 살의 나이로 「미시시피」州의 집에서 가출했었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집 형편이 가난하기도 했지만 의붓아버지와 사이도 아주 나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걸어야 할 지 모르는 먼길을 가는데 신발이 닳면 않된다고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신기리 집에가서 타이어 쪼각을 신발 밑창에 대어 주었다. 떠나던 날 엄마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포응하면서 「정 춥고 배가 고프거든 구세군 구호소 (Shelter)에 찾아가라」고 일러 주었는데 무작정 떠나는 길, 갈곳도 없고 찾을 사람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말, ‘다급하면 구세군에 가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도 든든했었다고 술회한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샌프란시스코까지 온 그는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하게 살아서 큰 재산을 모으지만 어려웠던 시절 구세군 보호소에서 먹은 따뜻한 국 한 그릇, 포근한 잠자리를 항상 고맙게 기억했다. 그리고 임종에 이르러 자기 모든 재산을 다 구세군에 기증한 것이다.
절대빈곤,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얘기이지만 미국에는 끼니를 염려해야하는 사람을 적게는 8백만 명에서 많게는 1천 5백만 명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동냥을 구하는 홈리스(Homeless)들을 흔히 우리는 사회에서 낙오한 마약 복용자나 알콜중독자 정도로 오해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사회인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어쩌다가 직장 잃어서 수입이 끊기고,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고, 게다가 가정까지 파괴되면 길거리에 나와 앉게 되는 사람이 바로 홈리스이다. 전혀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Less fortunate people"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우리보다 행운이 덜 따랐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일단 홈리스가 된 다음 두어 달이 지나면 아주 홈리스로 굳어서 이담부터는 구태여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않는다고한다. 그래서 구세군에서는 홈리스가 된 첫 두달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그 두 달을 보호해서 숨 돌릴 여유를 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지만 그 두달이 지나면 복귀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Thank you, God Bless you." 자선냄비 곁에서 종을 치고 서있으면 작은 돈이라도 냄비에 넣고 가는 손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한푼 두푼이 모아져서 잊혀졌다고 생각하는 형제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고, 배고파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자선 냄비 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자선(慈善)의 손길에서 「한 갈래로 맑은」 세상의 숨결을 느낀다. 선을 베푼다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없는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각박하게만 돌아가는가 싶어도 지나던 길 주머니를 뒤져서 자선냄비에 손을 넣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도 밝고 아름답게 빛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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