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겐 대체로 두 얼굴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가면의 얼굴, 다른 하나는 감추고 싶은 본래 그대로의 진면목이다. 어느 것이 진짜의 얼굴일까?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사람의 얼굴이란 민낯이 좋다고 하여 벌거벗은 채 그대로 달고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이란 가면이면 가면인대로, 솔직하면 솔직한 대로 그 표현의 의지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외롭고, 질시하고, 욕망하는… 그런 (본래의) 모습보다는 관용과 자제… 여유있고 기품있는 얼굴을 유지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본능일 것이다. 우리가 오페라나 연극 등 심취하는 것도 (아이러니컬하게)그 속에는 우리들의 과장된 얼굴… 가면을 벗은 뒤의 민낯… 그 후련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작품) 등은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으며 또 가면 쓴 얼굴… 그 가장 행렬에 놀아나는 비극적인 존재인가를 극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재산을 많이 모으면 재력가가 될 수 있고, 학문을 많이 쌓으면 학자가 될 수 있지만 예술은 이 땅 위에서 적절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무대… 그 민낯과 가장 행렬 속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라는 작품은 인간의 도덕과 본능… 그 가면 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은 ‘가면 ‘ 이라는 그 철학적인 성격을 다룬 작품은 아니고 스웨덴 왕의 암살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베르디가 이 작품을 다루는데 있어 왕의 암살이 가면 무도회장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주목해 제목을 ‘가면 무도회’라 붙였을 뿐이지만 본능과 도덕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점에서 ‘가면 무도회’는 제목과도 그렇게 동떨어진 작품은 아니었다.
베르디는 그 어느 작곡가보다도 두 개의 얼굴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무명시절의 베르디는 예술성에만 목숨을 건, 말 그대로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는 검투사였다. 가난하고 무명했던 시절… 아내와 가족을 모두 잃은 뒤, 파산만이 기다리고있던 베르디에게 그가 (후에) ‘행운의 별’이라고 부른 ‘나부코 ‘ 의 성공은 베르디를 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베르디를 있게 한 것은 ‘나부코 ‘ 가 아니라 1851년에 작곡한 ‘리골레토 ‘ 때문이었다. 이것은 베르디의 이전 성향과 다소 다른 것으로서, 성공에 대한 열망… 오로지 예술성에모든 것을 걸었던 이전 성향에서 한 발 물러서, 일종의 세속적인 즐거움(대중성)을 조화시켜 (오페라사에서도)초유의 히트를 기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했다.
’리골레토 ‘ 이후 베르디는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굳이 예술성에만 기대기 보다는… 즉 민낯 위에 가면을 살짝 걸치는 노련미(?)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춘희 ‘, ‘일트로바토레 ‘, ‘아이다 ‘, ‘가면 무도회 ‘ 등 히트 작품들은 모두 ‘리골레토 ‘ 이후에 탄생된 작품들이었다. 대신 예술성은 다소 꽝이었는데, ‘춘희 ‘ 등을 베르디의 대표작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베르디의 민낯을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나 다름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베르디는 1859년 ‘가면 무도회 ‘ 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창작하게 되는데(SF 오페라의 2014 가을 시즌 공연작품이기도 했음), 이 제목은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육책에서 나온 제목이었을 뿐이었다. 스웨덴왕의 암살 사건을 다룬 야심작이었는데 검열에서 그만 걸리고 말았다. 정치적인 이유가 그것으로, 대신 ‘가면무도회 ‘ 라는 제목으로 배경을 보스톤으로 변경하여 간신히 검열에 통과했다.
작품은 상투적이기는 하나 진지하고 다소 무거웠으나 제목이 좋아서인지(?) 흥행대열에 합류했고, 지금까지 널리 연주되는 베르디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베르디는 ‘리골레토 ‘ 이후 더이상 야성적인 힘… 위대한 예술성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 탄생했던 예술… 그 민낯에 대한 공포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가면 속에서 히히덕거리는… 그런 어설픈 가면놀이가 좋아서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양면성을 모두 엿볼 수 있는… ‘가면 무도회 ‘ 야말로 어쩌면 그 이름에 걸맞는 베르디의 진짜 가면 무도회… 운명의 작품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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