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의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함께 여행하기 좋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대개 베트남 북쪽의 하노이(Hanoi)나 남쪽의 호치민(Ho Chi Minh)을 캄보디아 시엠립(Siem Reap)과 묶어 둘러본다. 그러나 최근에는 베트남 중부의 휴양도시 다낭(DaNang)과 역사도시 호이안(Hoi An), 후에(Hue)를 시엠립과 함께 방문하는 여정이 인기를끌고 있다. 해변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고도(古都)를 주유(周遊)하는 낭만적이고 뜻 깊은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동부의 매력적인 세 도시로 여행을 떠나본다.
# 200년 전 시간이 멈춘 도시
투본 강 하구의 삼각주에 위치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다. 7~10세기 중국과 인도, 아랍을 잇는 향료무역로의 중간 기착지로 사용됐고, 16~18세기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까지 찾아드는 국제 교역항으로 기능했다. 이런 이유로 인도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을 쓴 통일신라의 승려 혜초(慧超)도 중국과 인도를 거치며 이곳에 들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호이안은 19세기 초에 들어서며 쇠퇴하기 시작한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Nguyen) 왕조를 창건한 지아롱(Gia Long) 황제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1802년 프랑스 루이 16세와 조약을 맺으면서 인근 도시인 다낭을 프랑스에 할양했기 때문이다. 이후 무역 주도권은 다낭으로 넘어갔고, 호이안의 시계는 서서히 멈춰 섰다.
그러나 이런 연유로 호이안은 옛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때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인구 12만명의 작은 도시는 현재 휴양도시 다낭,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후에와 함께 중부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 800여채가 있는 구시가(Old Town)는 동쪽의 재래시장과 서쪽의 호아이 강 광장(Song Hoai Square) 사이에 있다.
이 구역은 자동차 통행이 금지돼있어 여행자들은 걷거나 자전거, 시클로로 돌아다닌다. 특히 재래시장과 ‘일본교’(Japanese Covered Bridge)라 불리는 내원교(來遠橋)를 잇는 쩐푸(Tran Phu) 거리에 볼거리가 가장많다.
# 오래된 풍경 속을 거니는 도보 여행
호이안 구시가 도보여행의 시작점은 쩐푸 거리의 동쪽 끝이다. 이 거리는 남쪽으로 나란히 난 응우옌 타이(Nguyen Thai) 거리와 함께 호이안의 중심지로 꼽힌다.
쩐푸 거리는 서쪽을 향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 있다. 양옆으로는 1~2층의 노란색과 검은색, 붉은색 빛깔의 건물이 늘어서 있다. 건물은 벽면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때가 덕지덕지하지만 전체적으로 화사한 분위기가 감돌고 앙증맞은 느낌마저 든다.
건물 안에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분위기의 갤러리, 카페, 식당이 들어서 있다. 또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비롯한 화려한 빛깔의 옷을 파는 상점과 공예품이나 장식용 미술품을 현장에서 만들어 파는 전문점, 가방이나 신발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 거리에서는 ‘복건회관’(福建會館)‘, 광조회관’(廣肇會館)처럼 중국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장소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건물은 중국 푸젠(福建)성과 광둥(廣東)성에서 바다를 건너온 주민들이 모이는 집회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또 폭풍우를 잠재우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마조(祖)나 관우를 모신 사당도 볼 수 있다.
쩐푸 거리 중간에는 외국인의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카지미에르츠 크비아트콥스키(Kazimierz Kwiatkowsky,1944~1997)라는 폴란드 건축가로 호이안, 후에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쩐푸 거리 서쪽 끝에 이르자 1539년 일본인들이 건설한 내원교가 나타났다. 중세 무역의 중심지였던 호이안에는 중국, 일본, 유럽 등 외국 무역상이 많이 거주했는데, 당시 호이안에 체류한 일본인 무역상은 1,000여명이나 됐다고 한다. 내원교 건너편 응우옌 티 민 카이(Nguyen Thi Minh Khai) 거리는 일본인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내원교는 다리라기보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이다. 다리 안에는 불상을 모신 불단이 있고, 원숭이와 개의 조각상도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은 다리 안쪽에서 한참 동안 머물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곤 한다. 다리 앞으로는 수많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다리 건너 호아이 강 광장까지 이어지는 응우옌 티 민 카이 거리의 풍경은 쩐푸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 낭만적인 강변 풍경이 펼쳐지는 박당 거리
쩐푸 거리를 둘러본 후에는 강변을 돌아볼 차례다. 내원교에서 남쪽으로 50여m를 걸어가자 투본 강이 나타났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행인과 시클로, 오토바이로 북적거리는 박당(Bach Dang)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당 거리는 쩐푸 거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보다는 강변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많았다. 거리 분위기가 한결 여유로웠고, 좌판 식당에는 쌀국수를 먹는 베트남인도 있었다. 여행자들은 박당 거리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고 자전거나 시클로를 타고 다니며 느릿느릿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박당 거리를 산책하고 나면 이제 화려하게 치장된 안호이(An Hoi) 다리를 건너야 한다. 중세 도시 호이안을 대표하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강을 지난 후 왼쪽으로 조금 이동해 건너편을 바라보면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크고 작은 보트가 떠다니는 강 뒤편으로 화사한 노란색 건물이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 낮보다 낭만적인 호이안의 저녁
쩐푸 거리와 응우옌 타이 거리의 동쪽 끝에는 재래시장이 자리한다.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시장은 거리를 따라 과일, 채소, 생활용품,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과 노점으로 가득하다. 상점 안쪽으로는 쌀국수를 비롯한 베트남 전통음식을 저렴하게 파는 식당이 들어서 있다.
시장은 베트남 상인과 주민, 관광객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뒤섞여 무척 북적거린다. 자전거 행렬이 나타날 때마다 급하게 거리 바깥으로 비켜서야 한다. 구시가에는 속하지 않지만 베트남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흥겨운 장소이다.
호이안은 해가 저물면 거의 매일 축제를 방불케 하는 화사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시가 거리에는 영롱한 오색등이 내걸리고 식당과 카페, 옷가게, 기념품점은 환하게 불을 밝혀 관광객을 맞는다. 또 내원교는 빨강,파랑, 보라, 초록 등 조명을 달리하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특히 박당 거리는 호이안 야경의 하이라이트이다. 강변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고 강물에 띄우는 알록달록한 등이 판매된다. 관광객들은 장대 끝에 등을 달아 강물에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빈다. 기다란 작은 배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며 뱃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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