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붕괴’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의 붕괴 과정에서 언론지상에 자주 등장하던 경제학 용어다. 그런데 이번 주 월요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또 다른 성격의 “거품붕괴”가 거론되었다. 올해 6월에 버지니아재정분석연구소와 DC 재정정책연구소 그리고 메릴랜드경제정책센터 이렇게 세 기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이 바로 “Bursting the Bubble”이었다.
이 보고서는 워싱턴 DC인근 지역 주민들 사이에 갈수록 늘어나는 소득과 경제적 격차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바로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bubble: 거품) 지역 주민들 삶의 허구, 즉 붕괴(bursting)의 증거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불황을 지나면서 저임금 근로자와 고임금 근로자가 받는 임금 차이가 더 커졌다고 한다. 이 지역의 주거비를 포함한 높은 생활비는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더욱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한 실업률도 저소득층이 더 높다고 한다.
이 문제를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다루게 된 것은 계층/그룹 사이에 존재하는 학업성취 격차를 논의하면서였다. 미국의 많은 학군들 가운데 학업성취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군이 해결하지 못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인종 간의 학업성취 격차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종이란 백인, 아시아인,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으로 나뉘어지는 네 그룹을 가리킨다. 그 네가지 인종별 그룹에서 백인과 동양인 그룹이 학업 성취가 높은 그룹이며 흑인과 히스패닉이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물론 학업성취 차이를 분석하면서 그룹을 인종별로 나누지 않고 대신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즉, 가구 소득의 차이에 따라 학업성취도가 달라진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룹간의 학업성취 차이를 인종적 시각으로 볼 때 잘못하면 인종차별주의나 우월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득의 차이나 학생들의 영어의 모어(母語) 여부와 신체, 지적, 학습 장애등의 특수교육 필요 사유 존재 여부로 그룹을 나누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같은 소득수준의 가정이라도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학업성취도에 있어 인종별 그룹 사이에 통계상 의미 있는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업성취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엄마의 학력이라는 통계가 있기도 하며, 세습되는 부(富)의 차이에 있다는 학설도 있다. 통계상 백인들 사이에 세습되는 부의 규모에 비해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의 경우 겨우 6~7%에 불과하며 그것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학업성취 차이가 부의 세습 이전에 나타남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인종그룹 사이의 교육에 대한 문화적 시각 차이가 학업성취 차이에 가장 큰 이유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솔한 의논 없이는 학업성취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일선 교사들이나 교육행정가들이 경제적 차이와 그것이 초래하는 기회 불균형이 학업성취에 주는 영향에 대해 논의할 때 나타나는 열기가 문화적 차이에 대한 논의로 옮겨져 갈 때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은, 아마도 아직 우리가 이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눌 사회적 여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무엇이 인종그룹별 학업성취 격차의 진정한 이유이든지 간에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에도 이의를 달수가 없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워싱턴 지역에서 소득(빈부) 차이가 오히려 더 늘어났고, 저소득층의 생활고나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학업성취 차이를 극복하는데 큰 장애요소이다. 그러기에 엊그제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조기교육에 대한 추가지원 정책이 특별히 더 반갑게 들린다.
공고한 공교육과 평등한 유아/조기교육이 부모들로부터 받는 기회나 교육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잡아 주며 헌법상 우리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는 행복추구권의 기초가 된다고 볼 때, 학생의 개인능력 외의 요소가 경제적인지 문화적인지를 따질 필요 없이 현존하고 있는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최소화 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특히 교육정책 입안자인 나에게 이것이 더욱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