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in dust and ashes.
그러므로 내 스스로를 멸시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늦가을 기운이 완연한 11월 말, 이른 저녁 시작된 Thanksgiving 식사가 무르익던 중, 누군가 묻습니다.
“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people?” 어째서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생기는가? 사실 어제오늘얘기가 아닙니다. 심각한’ [serious] 질문입니다. 다들 종종 자문하게 되는‘애매한’ 질문입니다.
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people? 어째서 착한 분들에게 고약한 일들이 생기는가? ‘차카게 살자!’고명심하며 사는 분들에게 어째서 자꾸나쁜 일들이 생기는 건가? 어찌하여착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더 병들고 더 지치고 더 낙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와중에 생존경쟁의억척이들은 어찌하여 늘 이기면서 악독하게 사는가? 이 사악한 무리들은어찌하여 더 잘 살고 더 기름진 얼굴로 번들거리며 그토록 의기양양한 삶을 구가하는가? 아, 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가!
Why does God allowbad things to happen to good people?어찌하여, 하나님[이란 존재는] 선한사람에게 나쁜 일이 닥치도록 그냥내버려둔단 말인가? Why? 왜? Why?왜? 와이?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in dust and ashes.
그러므로 내 스스로를 멸시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Why does God allow bad things tohappen to good people? 신(神)이란존재는 어찌하여 불쌍한 아프리카 어린 ‘이들’을 그토록 모질게 내몰아 죽게까지 하는가? "우째 이런 일이?"를연발하게 하는 이‘ 부조리’[Absurdity]의 세상을 어떻게 계속 두고 보란 말인가? 하나님은 사랑? 창조주 하느님, 천주(天主)님은 고작 이 정도란말인가? Why do bad things happento good people? 어째서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생기는가? Why?Why? Why? 왜? 왜? 와이?제법 안다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다 이유가 있답니다. 다 가르치시기위함이죠.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단련되며 더욱 하나님 보시기에미더운 사람으로 키우시기 위해, 착한 사람들이 ‘더욱’ 시련을 겪게 되는겁니다.” God may allow bad things tohappen to good people to teach themlessons. 시련을 통해 정금(正金)으로만드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접수가 되시는지요? 가슴으로 와닿나요?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in dust and ashes.
그러므로 내 스스로를 멸시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세상 속 이곳저곳, 특히 신장개업 식당의 벽걸이로낯익은 문구입니다. "Though thy beginningwas small, yet thy latter endshould greatly increase." 이 말씀의 원전은 구약성경의 수려한 시극(詩劇)<욥기>입니다. 영어론, The Book ofJob[더 북 어브 좁]이라 하지요. 직업이란 뜻의 영어 job[잡]이 성경의 그 ‘착한 사람’ 이름을 가리킬 때는 좁’ ‘으로 유별나게 발음합니다.
어쨌든, 이 <욥기>는 진짜 ‘짠~한’시극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2500년 전 쯤에 나온 이 걸출한문학작품은 "왜 의인(義人)이 고난을받는가?"라는 애매한 문제를 그야말로 의(義)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착한 이가 나쁜 일을 당한다?" 이 질문자체가 얼마나 잘못된 건지를 가슴아프게 찌르고 있습니다.
"네가 착하다구?" 진짜 그렇까? ‘착한 분들’이 어쩌고저쩌고?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꿰진 질문이 바로 "Why do bad things happento good people?"이란 우문(愚問)이라가르칩니다. 의롭게 잘 살던 욥[Job]이모든 걸 다 잃고 이런저런 사연 끝에결국 고백하게 되는 바로 이 장면. <욥기>의 맨 마지막 42장 6절 모습입니다. 영어성경의 결정판 킹제임스 바이블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Wherefore I abhor myself, and repentin dust and ashes."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나 스스로를 지극히 증오하며, 다만 티끌과 재들 안에서 뉘우치나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義人) 욥은아무런 이유도 없이[?] 졸지에 모든 걸잃고, 어쩌다 결국 이렇게 처절한 고백을 하게 되는지 그 저간 사연은 직접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힌트를 하나 전한다면, 이 세상에 ‘의인(義人)’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창조주의 준엄한 말씀입니다.
또 한해가 저무는 11월 말, 감사기도로 먹고 마시는 Thanksgiving Dinner,그토록 풍성하게 감사함을 느낄뿐입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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