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정전 60주년 맞아 한·미 정부 합작품
▶ 전란 속 꽃핀 유·무명 작가 작품 60여점 담아
체스터 장 박사가 ‘한국전쟁 시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들’ 책과 커버에 나온 소정 변관식의 ‘춘조’ 접시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체스터 장 박사 소장, 한국전 당시 예술품들 스미소니언 박물관서 책으로 발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예술은 피어난다. 참혹했던 6.25전쟁, 그 척박하고궁핍했던 피난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고, 나무를 조각하면서 생계를 잇고 예술혼도 달랬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스미스소니안 박물관에서 지난 달 발행한책 ‘한국전쟁 시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들, 체스터와 완다 장 컬렉션’(Undiscovered Art from the Korean War, Exploration in the Collection of Chester and Wanda Chang)은 1950년부터 1953년 전란의 시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예술품 60점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중섭, 박수근, 김관호, 변관식 등 유명 작가의 미술작품들도 있지만 무명의 기능공들이 제작한 철제, 은제, 목각인형, 도예, 자수 등도 다수 포함돼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의 후원으로 발간된 이 작품집은 오는13일 워싱턴 DC에서 미 국방부 산하국방대학원이 주최하는 미국 영웅상 시상식 갈라(American Patriot Award Gala)를 위해 제작된 책이다.
국방대학원이 매년 11월 수여하는 영웅상은 그 해 미국의 영웅 한 명을선정하는 영예로운 상으로, 역대 수상자들이 조지 W. 부시, 힐러리 클린턴, 로버트 도울, 로버트 게이츠, 헨리키신저, 존 매케인, 콜린 파월 등 대단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올해 2014 수상자는 이례적으로 한 사람이 아닌 미국의 주방위군 ‘내셔널 가드’ (National Guard)가 선정됐다. 이것은 한국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참전군인 중 내셔널가드의 희생이 가장 컸다는 사실을 기리기 위해 국방대학원이 특별히 마련한 행사로, 16개 참전국 대표들이 유니폼 입고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전쟁 시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들’의 소장자 체스터 장 박사는 “이 행사에 맞춰 책을 서둘러 출판하느라 전쟁관련 컬렉션 중 절반만 수록됐다”고 설명하고, 무엇보다 “미 정부기관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한국 정부기관인 워싱턴 한국문화원이 합작으로 만들어진 첫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연방 항공국(FAA)에서 국장과 고문, 검열관을 역임했고 현재 국방대학원의 재단이사인 체스터장(장정기·75) 박사는 한국 문화재 컬렉터이며 기증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명성황후의 동생인 민영휘씨의 외손자인 그는 수많은 보물과 유물들을 한국의 박물관은 물론 LA카운티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하와이대 한국관에 기증해 왔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2011년에도 장 박사가 소장한 한국 도자기에 대한 책 ‘정체성의 상징, 체스터 & 완다 장의 한국 도자기 컬렉션’(Symbols of Identity, Korean CeramicsFrom the Collection of Chester andWanda Chang)을 펴낸 바 있으며, 앞으로도 장 박사가 소장한 1,000여점의 한국 유물 관련 책을 계속 출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두 번째로 나온 이번 책은 그의 소장품 중에서 1950년대 전쟁기 예술품들만을 추려내 각종 연구 자료와 논문을 토대로 소개한 책으로, 총 132점 가운데 절반이 넘는 나머지 작품들은 앞으로 나올 세 번째 책에 포함될 예정이다.
“한국문화의 또 다른 장을 펼쳐보이는 책입니다. 1950년에서 53년 사이에 있었던 예술은 한국 예술사에서 잊혀지고 잃어버린 미싱 챕터(missing chapter)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의 현대 한국미술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설명한 장 박사는 전쟁 당시 한국에서는 누구나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며 아무 물자도 없던 시절이라 화가들은 카드보드나 접시에 그림을 그려 팔았다고 전했다.
“그때 피난지 부산에 일본인들이 두고 간 가마가 있었는데 거기서 굽는 벽걸이 접시 같은 기념품에 배고픈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고 얼마간 돈을 벌었습니다. 이 작품들이 PX로 들어가 외국 군인들에게 팔렸고, 많은 미군들이 이것을 미국으로 가져와 집안에 장식했으니 이것이 한국이 처음 벌어들인 외화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문화가 최초로 해외에 전파된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에 소개된 예술품들은 당시주한 미군들에게 팔렸거나 고위 장성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훗날 장 박사가 수집한 것들이다.
장 박사는 이 작품들을 대부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수집했다. 미 공군복무시절 오클라호마의 작은 PX에서 내다놓고 파는 것을 사기도 했고, 일본 미대사관 근무시절에 민간 군인들에게서 몇 점 샀으며, 하와이서도 좀 샀다고 한다. 1970년대 초 한국에 들렀을 때 만난 미국인에게서는 중요한 작품 2점, 박수근의 것을 샀다.
그런 물건을 알아보고 그 중요성을 간파할 수 있었던 안목은 고교시절 박상옥 미술선생 때문에 갖게 된것이다. 체스터 장 박사는 어린 시절미국에서 살다가(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첫 영사관 개설을 위해 LA에 파견된 장지환씨가 부친이다) 1953~57년 잠시 한국에 들어가 산 적이 있는데, 이때 부산 피난지의 경기고교 2학년 재학 시절에 담임이며 화가였던 박상옥 선생으로부터 한국 미술과 예술에 관해 배우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미군부대 PX와 한국 경질 도자기 회사들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리며 자신의 예술혼을 지켜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하는 장 박사는 그러한 경험들이 훗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미술품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애정을 갖고 모으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전한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았던 화가들이 아무도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장 박사는 “문제는 이런 미술품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장 박사는 이 시기의 한국 예술을 처음으로 조명한 이 책의 공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내 아시아 문화역사프로그램의 연구원들인 트레버 메리온(Trevor Merrion), 재스퍼 바흐-퀘스바스(Jasper Waugh-Quasebarth), 로버트 폰시온(Robert Pontsioen), 그리고 총 책임자인 폴 마이클 테일러(PaulMichael Taylor) 디렉터에게 돌린다.
“너무도 열심히 계속 묻고 찾고 연구하는 이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나온책”이라며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 두나라의 성공적인 협력으로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이 아니라 영원히 기억되는 전쟁이 되기를, 또 거기서 피어난 예술이 ‘잊혀진 예술’ (Forgotten Art)이 아니라 한국미술사에 한 챕터를 차지하는 기억되는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래 물려받은 집안의 유물이 많았지만 어려서부터 수집이 취미였던 체스터 장 박사는 지금까지도 수집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수집하고 나누는 것이 나의 삶” (I collect, I share, therefore I am)이라는 그는 그동안 기증한 것만도 수백점이 넘지만 앞으로도 더 기증하고, 더 수집하고, 어쩌면 작은 사설 박물관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할 생각도 갖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품들, 체스터와 완다 장 컬렉션’에 수록된 작품들은 내년 중에 미국동부와 서부, 그리고 한국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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