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친의 세 아들 부양하려 최저임금 받으며 동분서주
▶ 수면부족 차 안에서 때우다 편의점 주차장에서 질식사
마리아 페르난데즈(왼쪽)가 올해 새로 사귄 남자친구 글렌 카터와 그녀의 딸 한나 윌슨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어느 일벌레 여성의 죽음
지난 8월25일 아침, 뉴저지주 뉴왁 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남쪽으로 1마일가량 떨어진 한 편의점 주차장에 낡은 흰색 기아 SUV 한 대가 들어왔다. 당시 와와 편의점 감시카메라에 차량이 찍힌 시간은 오전 6시27분. 정상시간대 출근자의 차로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운전자의 모습은 감시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3시15분. 교대근무를 마친 편의점 직원은 오전에 보았던 기아 SUV가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미심쩍은 마음에 차 안을 기웃거렸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뒤로 한껏 제낀 운전석에 잠자듯 누워 있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편의점 직원이 운전석쪽 차창을 두드려 보았지만 ‘던킨 도너츠’ 유니폼을 입은 운전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차 문은 잠겨 있었고, 차창도 모두 닫혀 있었다. 편의점 직원은 황급히 자신의 셀폰으로 911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응급처치팀이 차량의 뒷유리창을 깨자 강하고 역겨운 개스냄새가 풍겨 나왔다.
사망자의 신원과 사인은 곧 확인됐다. 이름은 마리아 레오노르 페르난데즈. 나이는 32세.
사인은 개스중독에 의한 질식사였다.
자살이나 타살 가능성은 일찌감치 배제됐다. 경찰은 차 안에서 잠이 든 그녀가 뒷좌석의 가스 캔에서 새어 나온 휘발성 개스에 질식사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한 가지 의문은 야근을 마친 그녀가 왜 가까운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직장 인근의 편의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둔 채 잠이 들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마리아는 공항 인근과 도심의 던킨 도너츠매장 세 군데를 교대로 돌며 팍팍하게 살아가는 최저임금 노동자였다.
하루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해 계속 일터를 옮겨가며 쉴 틈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수시로 밀려오는 졸음과 늘 힘겨운 싸움을 벌였을 터였다. 졸음 앞에선 백약이 무효다. 졸음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면뿐이다.
마리아가 근무 교대시간 사이사이에 아무곳에나 차를 세우고 토막잠을 자는 버릇이 생긴 것도 만성적인 수면부족 탓이었다.
마리아의 일과는 직장에서 직장으로 이어졌다. 매일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그녀는 뉴왁 기차역 대합실 안의 던킨 도너츠 매장에서 카운터를 보았다.
다음 일터는 하루 24시간 영업하는 린덴 도심의 던컨 매장. 그 곳에서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미 살인적 수준의 노동량에 해당하지만 마리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또 다른 던킨 도너츠점에서 근무했다.
주당 최소한 87시간 이상을 근무한 셈이다.
주 5일 기준으로 근무시간을 환산하면 하루 17.4시간에 해당한다. 그래봤자 연 수입은 고작3만6,000달러, 월 3,000달러에 불과했다. 무지막지한 근무시간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입이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으면 제 아무리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일해 봤자 그 이상의 소득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 뉴저지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8.25달러.
그나마 올해 초 1달러가 오른 액수다.
마리아는 법적으로 미혼이었다. 부양가족이 없으니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지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지 않았나 싶겠지만 오지랖 넓은 그녀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마리아가 태어난 곳은 매서추세츠. 하지만 그녀는 열한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포르투갈의 오지로 역이민을 떠났다. 거기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짐 가방 하나를 달랑 든 채 미국으로 혼자 돌아왔을 때 나이는 19세.
운 좋게 던킨 도너츠에 일자리를 잡은 그녀는 경제적으로 늘 쪼들렸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미국 생활을 꾸려나갔다.
미국에 돌아온 후 얼마 안 돼 칼란드라 제과점의 파트타임 일자리까지 따낸 그녀는 마이클 잭슨 광팬들과 의기투합해 5인조 팬클럽을 결성하는 등 나름대로 삶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2010년 온라인 채팅을 통해 세 아들을 거느린 백수건달 홀아비 리처드 컬헤인을 만나면서 마리아는 심각한 생활고에 직면하게됐다. 이들을 혼자 먹여 살리기엔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정부기관에 컬헤인의 아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월 350달러 쪽방에서 방 세개짜리 아파트로 옮겨야 했다. 렌트비가 한꺼번에 3배로 치솟은 셈이었다.
먹을거리를 대기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식성이 좋았고, 남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극성스러웠다.
당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단 한 푼이라도 수입을 늘리기 위해 마리아는 근무시간이 짧은 칼란드라 제과점를 떠나 던킨 도너츠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일자리를 연이어 잡았다.
마리아는 가슴이 따듯한 여자였다. 컬헤인이 친모상을 당하자 그녀는 3,000달러를 들여 네 부자의 장례식 양복을 마련해 주었다.
던킨 도너츠 근처 노숙자가 비에 젖어 떠는 모습을 보고 텐트를 구입해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컬헤인과는 갈라선 이후에도 가끔씩 아이들을 찾아가 장난감과 게임 등 푸짐한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마리아는 칼헤인과 살림을 합치면서 중고 기아차를 1,000달러에 구입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바꾸어 타가며 직장에서 직장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번 근무시간까지 조금이라도 짬이 생기면 차 안에서 토막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8월25일, 오전 6시20분에 세 번째 일을 마친 그녀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장례식장에 모인 직장 동료들은 전 남자친구와 살면서 쌓인 빚을 끄고, 새로 만난 남친과의 새 출발을 준비하다보니 마리아로서는 일을 줄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장례식 비용 6,000달러를 모아준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하관의식이 시작되기 전자리를 떴다. 그들은 모두 2개 이상의 일자리를 가진 최저임금 근로자들이었다.
하관예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조문객들 가운데에는 마리아가 사준 양복을 입은 컬헤인과 그의 세 아들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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