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에 입원한 시라소니에게 동대문파 행동대장 이석재가 문병을 왔다. “형님 미안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시라소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은게 머이가? 왼 쪽 다리 하나 남고 다 부서져서야.” 이때 이석재는 품에서 망치를 꺼내어서 성하게 하나 남았다는 왼 쪽 다리 마저 내려쳐 부러뜨리고 도망했다. 참으로 쪼잔한 양아치 짓이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는 시라소니가 입원한지 6 개월후 기적적으로 완쾌되고 피나는 재활훈련 통해서 체력을 되찾은 다음 동대문파에 혼자 쳐들어가서 마침 모여있던 간부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고, 다음날 이정재 집에게까지 찾아가서 이정재의 항복을 받고 용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상당한 픽션이다. 설사 시라소니가 재활훈련을 통하여 체력을 회복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때는 이미 이정재가 <동대문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막강한 조직에 둘러싸여있고 자유당 정권의 비호까지 받고 있어서 시라소니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라소니의 주먹은 아직 녹이 슬지 않아서 인천의 주먹들로 구성된 자유노조원 300여명이 몰려왔을 때 시라소니가 단검을 들고 호통을 쳐서 물리친적도 있었고, 이정재가 자유당의 하수가 되어 폭력을 휘두를 때 조봉암의 경호원, 뒤에 신익희와 조병옥의 선거운동 겸 경호를 맡기도 했다. 경호업무를 할 때에도 임무가 끝나자 조용히 사라졌을 뿐 무슨 보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정재에 대한 원한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래서 시라소니는 기회만 있으면 이정재를 쏘려고 항상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이정재가 몇번이나 시라소니의 저격권 안에 들어오지만 시라소니의 간증 대로 “하나님이 이정재를 살려주어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이 누구에게 증오와 원한을 품으면 우선 자신에게 먼저 독(毒)이 되는지 시라소니는 58년 콩팥과 간에 이상이 생기고 장질부사까지 겹치는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메었는데, 그때 시라소니는 벽에 걸린 십자가의 빛이 몸에 닿으면서 병이 치유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까지 받은 장로님 아들이 그 동안 잊었던 예수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부인의 손에 끌려 교회에 나가면서도 시라소니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마 6:43)”는 성경 말씀에는 골백번도 더 고개를 흔들며 부정을 했다. 이정재 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라소니는 기도중에 은밀한 한 음성을 들었다고 후에 간증한다. “너는 너의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였느냐?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였다. 너는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 시라소니는 그 때 주일학교 시절에 외웠던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한 것 처럼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구절을 생각하며 주먹과 폭력으로 살아온 자기 인생을 깊이 회개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정재도 생각하면 불쌍한 영혼이다. 용서하자. 시라소니는 믿음으로 증오심을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이정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품고 다니던 권총을 목사님 앞에 내려 놓았다. 시라소니는 용서함으로 비로서 자유함을 얻은 것이다. “증오심을 내려 놓으니 그렇게 내 맘이 가벼울 수 없었습니다” 후에 시라소니가 한 고백이었다.
1961년 5.16 군사혁명 후 전국적으로 깡패 소탕령이 내려져서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과 함께 이미 신앙 생활에 열중하던 시라소니까지 잡혀갔었으나 시라소니 만큼은 교인들의 탄원으로 곧 풀려난다. 감방에 있을 떄 시라소니를 만난 이정재가 무룹을 꿇고 사죄를 했다. 그때 시라소니는 “내래 다 잊어서. 나가면 술 한잔 하자우” 하고 시원스럽게 용서했다고.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취조실에서 한 손에 성경책을 끼고 등장한 시라소니가 린치사건 묻는 심문관에게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고, 취조실을 나가는 이정재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정재, 힘내라우. 다 잘될기야”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이정재 등은 “나는 깡패입니다”하는 패를 달고 조리돌림을 당한 다음 8월 17일 혁명정부로부터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9일 형이 집행되었다.
시라소니는 그 후 영락교회 집사님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정재를 전도하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뜨게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여기면서 ‘주먹으로 흥한 자 주먹으로 망한다’는 간증으로 교회를 눈물 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 시라소니의 나머지 성한 다리까지 부러뜨리고 도망간 이석재가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죄를 하자 시라소니는 이석재를 두손을 잡고 일으키며 그랬단다. “너도 예수 믿고 구원 받아라.”
1983년 1월 25일 시라소니 이성순은 금호동에 있는 두 칸 짜리 셋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라소니는 평생 무슨 폭력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폭력에 관련된 이권에 개입해서 돈을 번적도 없다. 그리고 전과기록 역시 없다. 그 시절 낭만파 주먹으로 아무 것도 가진것 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가 훌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시라소니는 부인 이진옥 여사 사이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외아들 이의현은 아버지가 소원하는대로 목사가 되어서 경기도 일산에서 현재 목회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를 갚는 일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나니라.( 로마서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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