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자은행 직원 실수로 남성 기증자 것 뒤바뀌어 고민 끝에 손해배상 소송
▶ “피부색 편견 때문 아니라 약속 어긴 책임 묻는 것”
[인공수정으로 출산한 레즈비언 엄마 ‘황당’]
인공수정으로 임신에 성공한 백인 여성이 정자은행 측의 실수로 흑인 아기를 출산했다며 최근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기이한 소송의 원고인 제니퍼 크램블렛과 그의 동거녀 아만다 진콘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말 타면 경마를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동성혼 허용의 바람을 타고 일단 법적 부부로 이름을 올린 이들은 친 자식을 갖고 싶어 했다.
동성커플은 구성원들의 성별조합이 ‘남-남’이건 ‘여-여’건 간에 독자적인 생식이 불가능하다. 남-남 커플에겐 자궁이 없고 여-여 커플에겐 정자가 없다. 아기를 갖고 싶다면 자궁, 혹은 정자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물론 자궁을 빌려 써야 하는 게이 커플보다는 레즈비언 짝이 아기 갖기가 훨씬 수월하다.
열 달 간 대리모 역할을 할 여성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정자는 ‘정자은행’에서 간단하게 구할 수 있다. 정자 은행에는 급속 냉동방식으로 보전된 남성 기증자들의 ‘씨앗’이 빼곡하게 저장되어 있다.
‘정자 샤핑’을 위해 3년 전 진콘과 크램블렛이 찾아간 곳은 시카고에 위치한 미드웨스트 스펌 뱅크였다.
그곳에서 두 커플은 정자 기증자 기록부를 샅샅이 뒤진 끝에 푸른 눈에 금발 머리를 지닌 380번 남성의 정액을 선택했다.
새로 태어날 아기가 사진 속의 기증자와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태어난다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콘을 꼭 빼닮았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임신 5개월로 접어들면서 크램블렛은 자신의 자궁에 깃든 태아가 흑인이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와 진콘은 380번 남성의 정자를 선택했지만 체외수정에 사용된 정자는 흑인인 330번 남성이 제공한 것이었다.
병원 직원이 날림체로 쓰여진 기증자 넘버를 잘못 읽는 바람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불상사’였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진콘과 크램블렛은 곧 태어나게 될 아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어렵사리 품은 생명을 낙태로 제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흑인 가정에 입양을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기가 태어났다.
극심한 산고를 거쳐 나은 딸 페이턴에 대한 크램블렛의 애착은 남달랐다. 피부색이 다르다지만 그녀가 열달 동안 배에 넣고 키운 생명이었다.
결국 레즈비언 부부는 미드웨스트 스펌뱅크 측에 배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백인 밀집촌인 오하이오주 유니언타운에서 흑인 소녀를 키우는데 따른 스트레스와 우려를 배상금 요구의 근거로 제시했다.
크램블렛은 마을 전체의 분위기가 흑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과 자신의 가족 중에도 갈색 피부를 지닌 딸에게 강력한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딸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진콘과 크램블렛은 올해 두 살된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를 지켜본 지인들 역시 페이턴에 대한 부모 사랑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흑인 레즈비언으로 백인 파트너와 디트로이트에서 동거중인 제시카 배로우는 진콘 커플이 정자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인종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배로우는 진콘 커플이 소장에서 “인종주의적인 언급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고 흑인 아기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으며 대신 아기에 대한 그들의 무한 사랑을 표시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백인 밀집촌에서 아기가 적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딸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자금의 필요성을 거론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배로우는 “어떤 거래건 고객이 돈을 지불했으면 원하는 물건을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배로우는 “A라는 물건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했는데 B라는 엉뚱한 물건을 받았다면 이에 따른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배상요구는 B라는 물건이 상대적으로 열등하거나 영 마음에 차지 않아서 취하는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자신도 백인 파트너와 의논한 끝에 정자은행에서 흑인 남성의 정자를 선택해 아기를 낳았다는 배로우는 “진콘 커플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며 여기에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편견이라든지 인종주의적 색깔을 덧칠하려 드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흑인 아기를 입양한 로리 멀렌은 “백인 가정에서 피부색이 다른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멀렌은 “주변의 백인들은 멀렌에게 왜 백인 아기를 입양하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날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백인 친지들의 손길이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딸 앞에서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이냐”고 대놓고 묻기도 했다.
멀렌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아기를 입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진콘 커플이 느끼는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멀렌은 “약속한 것을 주지 못한 정자은행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콘의 소송을 바라보는 흑인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부터 민권법이 제정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흑인 여성에게서 아기를 낳은 백인 남성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사회는 이를 묵인했다. 그러나 백인 여성이 흑인 아기를 낳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스캔들이었다. 백인 여성은 늘 강간을 당한 피해자로 간주됐고, 흑인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흑인들은 진콘 커플에게 그다지 동정적이지 않다. 아기가 흑인이라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사살 자체를 못마땅해 한다.
이에 대해 크램블렛의 변호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흑인 아기를 갖게 된 진콘 부부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피부색이 다른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힘겨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정자은행 측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항 일이며 배상판결이 나와 딸의 성장환경을 개선하는데 사용된다면 그 또한 좋을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